[정재정의 독사만평] 한일의 역사화해와 역사공동연구/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정의 독사만평] 한일의 역사화해와 역사공동연구/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3-05-08 01:32
수정 2023-05-08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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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 일체감 가져야 ‘역사화해’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하려면
적대 불신 해소할 계획 마련하고
갈등 완화 위한 역사공동연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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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부와 민간 양쪽에서 한일 관계가 급속히 개선의 물결을 타고 있다. 한 달 사이에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방한이 이어지고, 형식상 남아 있던 양국 사이의 수출 규제와 정보 장애도 전부 해소됐다. 양국의 상호 여행자 수는 코로나 만연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하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도 상당히 누그러졌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한국 정부 특히 윤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행동이 이런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봐도 틀림없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여러 난관과 갖은 비난을 무릅쓰고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풀었다. 뜨악하던 일본 정부도 이제 한국 정부의 진의와 용기를 평가하고 손뼉을 마주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역사 현안이 해결 국면을 맞았다고 해서 한일 관계가 일직선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경험에서 보건대 역사 문제의 수습에는 항상 반동이 뒤따라 한일 관계를 더 나쁘게 만들었다. 따라서 모처럼 맞은 관계 개선의 동력을 지속적으로 살려 나가기 위해서는 한일이 역사화해라는 궁극적 목표를 세우고 담대하고 치밀하게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역사화해란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분쟁을 종식하고 우호적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을 말한다. 역사화해의 최상 목표는 정부끼리뿐만 아니라 국민이 서로 적대와 불신을 해소하고 존중과 신뢰를 쌓아 일체감을 형성하는 데 있다.

회고하면 한일이 역사화해에 적극 나선 것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전후한 시기였다. 공동선언에서 오부치 전 총리는 식민지 지배로 인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김 전 대통령은 오부치 전 총리의 역사 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 관계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했다.

나아가 오부치 전 총리는 한국이 꾸준한 노력으로 비약적 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해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번영한 데 대해 경의를 표했다. 이에 호응해 김 전 대통령은 전후 일본이 평화헌법 아래 전수방위 및 비핵 3원칙을 비롯한 안전보장 정책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지원 등을 통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수행해 온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한일은 공동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십 개의 실천계획을 마련했다. 당장 청소년과 대중문화 교류를 활성화하고 월드컵 공동 개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일본 역사 교과서의 한국사 왜곡 문제 등이 불거지자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설치해 역사 대립의 완화와 역사 인식의 심화를 모색했다. 공동선언과 실행 세목의 내용을 보면 한일은 확실히 역사화해의 길로 성큼 들어선 셈이었다. 그렇지만 그 후 양국은 역사화해의 노력을 제대로 계승하지 않았다. 역사공동연구도 제2기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역사 갈등은 오히려 깊어지고 국민 감정은 극도로 악화됐다. 양국 정부는 화해를 모색하기는커녕 불화를 부추겼다.

윤석열 정부는 가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본떠 한일 관계 개선을 말한다. 진정이라면 좀더 고상하게 역사화해라는 궁극적 목표와 구체적 계획을 마련해 실천하는 게 좋겠다. 그중 하나가 역사공동연구의 재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평가하는 역사 인식의 수립 없이는 관계 개선이나 역사화해를 이룩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 관계사의 공동연구와 보급이 꼭 필요하다. 역사공동연구는 갈등을 완화·치유하는 수단이나 화해를 실현·담보하는 방법으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한일 양국은 내친김에 역사공동연구를 가동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는 기반을 구축하기 바란다.
2023-05-0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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