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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 고사성어의 외교 레토릭/원동욱 동아대 국제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고사성어의 외교 레토릭/원동욱 동아대 국제학부 교수

입력 2016-03-13 18:04
업데이트 2016-03-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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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유학했던 필자의 경험을 통해 보면 중국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고사성어를 사용한다. 정치 지도자의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고사성어가 갖는 함축적 표현으로 간략하고도 명쾌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으면서도 비유적 표현을 통해 자칫 직접적 언급이 가져올 수 있는 마찰을 피하려는 의미이다. 직접적 언급을 피하면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다는 점에서 ‘외교적 언어’가 갖는 특성과 매우 닮아 있다. 이런 연유인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와 관련하여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이미 여러 차례 고사성어를 활용하여 중국의 입장을 표현한 바 있다.

●項莊舞劍 意在沛公(항장무검 의재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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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욱 동아대 중국일본학부 교수
원동욱 동아대 중국일본학부 교수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달 12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한국과 미국이 도입 논의를 시작한 사드 체계를 ‘칼춤’에 비유했다. 왕이 부장이 인용한 ‘항장무검’의 고사는 항우(項羽)의 책사 범증(范增)이 기획한 홍문연(鴻門宴)에서 나왔다. 항우가 유방(劉邦)을 제거하자는 범증의 건의를 무시하자 범증은 수하인 항장을 불러 칼춤으로 흥을 돋우다가 기회를 틈타 유방(劉邦)을 살해할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유방의 책사 장량(張良)에게 신세를 졌던 항우의 숙부 항백(項伯)이 무대에 올라 유방을 향하는 칼날을 막아낸다.

이러한 ‘항장무검‘의 고사는 이후 겉보기와 실제 노림수가 다르다는 의미로 쓰여 왔으며, 중국 언론매체에서도 자주 사용해 온 레토릭이다. ‘패공’은 바로 중국과 러시아이며 미국을 ‘범증’에, 한국을 범증의 수하인 ‘항장’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된다.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 한·미의 사드 배치 의도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완곡하게 표시한 것이다.

●司馬昭之心 人皆知(사마소지심 노인개지)

왕 부장은 인터뷰에서 계속해서 위와 같은 고사성어를 인용한다. 이 고사성어는 “사마소의 마음은 길 가는 사람들도 다 안다”는 의미로 삼국시대 위나라의 대권을 장악하고 있던 사마소가 당시 황제였던 조모를 꼭두각시로 여기고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것에 대해 조모가 거사를 꾀하면서 사용했던 말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유래하여 이 고사성어는 권력 따위를 탈취하려는 음모와 야심이 다 드러났음을 비유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왕이 부장의 언급은 미국을 위나라 황제인 조모를 살해하고 권좌에 오른 사마소로 비유해 “어떤 나라도 한반도 핵 문제를 빌미로 중국의 정당한 권익을 침해하는 데 강력히 반대한다” 혹은 “사드가 한반도 방어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보통사람도 다 안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처럼 왕이 부장이 두 고사성어를 통해 밝힌 메시지는 사드 반대에 대한 중국의 외교적 입장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최근 다시 사드 배치와 관련한 한·미 간 논의가 재개되고 한반도 정세의 긴장이 더욱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의 우려는 더욱 깊어간다.

이제 완곡하고도 우회적인 외교적 언사로서 고사성어의 레토릭은 사라지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의 최대 이웃국가로서 한반도 안정이 훼손되거나 중국의 이익이 정당한 이유 없이 침해받는 것에 대해서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보다 직접적이고 강경한 언급으로 바뀌고 있다. 사드 문제로 중국과의 대결과 충돌을 감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냉전구도로의 복귀가 아닌 우리 나름의 한반도 평화를 만들기 위한 해법과 출구전략이 적극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2016-03-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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