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경 작가
한 가지 근심은 천장에서 물이 새는 거다. 위층을 살펴보아도 누수지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물이 떨어지는 자리에 휴지통을 놓아 두었다. 바닥 한편, 생뚱맞은 위치에 휴지통을 놓아 둔 채 한 달이 지났다. 해가 들지 않아도 이탈리아 아라리아는 잘 자라고 있고, 반지하라 바깥과 닿아 있는 환기구를 통해 흐릿하게 새소리도 들린다. 하루에 고작 한두 번, 그것도 라디오를 꺼야 영접할 수 있는 소리. 지상에서 흔하게 들어 왔던 소리지만 여기서는 안팎으로 고요해야 들을 수 있다. 얼마 전에는 바람도 찾아냈다. 아라리아 잎이 가늘게 흔들리기에 살펴보니 어디에선가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작업실에 들른 그녀에게 새소리와 함께 바람도 들어온다고 흥분해 말하니 피식 웃고 만다.
“쌤, 그게 그렇게 신나요?”
미세하게 이파리가 흔들릴 뿐인데도 그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 그녀는 살이 오른 아라리아 잎에 끌려 새소리를 듣지 못하고 가 버렸다. 오랜 세월, 바람과 햇살과 새소리가 지천인 지상의 세계에서 살아온 터라, 장시간의 고요를 견디지 못해 작업실을 나와 계단을 올라가면 아래세계에서 느낀 아득한 흥분을 쉽게 잊고 만다. 그래도 잊히지 않는 것은 천장에서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였다.
어느 날 윌리를 닮은 한 사람이 작업실에 들렀다. 친분이 전혀 없는 그 사람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물방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휴지통의 물을 비우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화분을 하나 놓아도 좋겠어요.”
떨어지는 물을 보며 그 사람이 말했다. 이 나이에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그리 설렐까. 고백처럼 들려온 그 조언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집 앞 베란다에서 새싹을 틔우지 못하던 개나리재스민 화분을 들고 내려왔다. 그러고 시간이 좀 흘렀다. 지금 개나리재스민 줄기에 연두색 새싹이 한창 돋고 있다. 물받이로 받혀 놓은 작은 고무대야에 물이 떨어지면 깊은 우물소리도 들린다. 어쩌다 새소리도 들리고 바람도 인색하게 드는 그곳에서 나는 윌리를 닮은 그 사람과 친분을 쌓아 가고 있다.
2022-04-20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