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도서정가제가 궁금하신가요/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시론] 도서정가제가 궁금하신가요/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입력 2014-10-28 00:00
업데이트 2014-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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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가 궁금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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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저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명색이 출판사 대표인데 왜 궁금하지 않으냐고요?

혹시 여러분께서는 매주 가는 등산의 목표 지점이 궁금하신가요? 물론 처음 가는 산의 경우는 다르겠지요. 그러나 늘 가는 곳을 궁금해하는 분은 거의 안 계실 것입니다.

제가 도서정가제를 궁금해하지 않는 까닭 또한 목표 지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서정가제가 되었건 그 어떤 문화와 출판정책이 되었건 그 목표 지점에는 돈이 있지요. 다른 말로는 탐욕이라고 하던가요.

문화와 출판 정책뿐이겠습니까? 경제야 그렇다 치고 정치, 사회, 예술, 교육, 나아가 종교까지, 돈을 추구하지 않는 분야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있나요? 그리고 거의 모든 대한민국인들은 각기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죠. 돈으로 성을 쌓기 위해 말이에요. 그리고 성을 쌓는 데 필요한 자원은 한정돼 있으니 서로 마주앉아 끝없이 다투는 것은 마땅한 결과겠죠.

다시 도서정가제로 돌아가 볼까요. 새로운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눈앞에 둔 지금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목표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돈이죠. 그렇기 때문에 시행령의 한 구절이 초래할지 모르는 상상하기도 힘든 결과를 고민하고 또 우려합니다. 이 제도의 시행을 눈앞에 둔 지금 잘못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오직 돈을 추구하는 이 사회에서 오랜 시간 살다 보니 누구든 상대방 또한 돈을 추구할 거라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오직 돈을 추구할 것이 분명하다고 여기며 논의하는 것은 참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렇게 훈련받았지요. 돈이 안 벌리는 책을 내는 출판인은 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왜 팔리지 않는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를 나라가 지원해야 하느냐고 되묻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에 산다는 것 자체가 그런 훈련을 받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도서정가제가 되었건, 문화진흥이 되었건 결론은 돈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물 샐 틈 없는 방식으로 시행령을 만들고 적용시킨다 해도 결국 물은 샐 것입니다. ‘열 명의 경찰이 한 명의 도둑을 못 잡는다’고 했던가요.

출판이 이 나라의 문화를 창조, 기록, 보관, 전승, 확산시키는 일이라는 생각, 이 황홀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생각을 모두가 공유하지 않는 한, 상대방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추정하지 않는 한, 어떤 방식의 제도도 결국은 돈을 추구하는 자들의 농간에 넘어갈 것이고 그에 따라 모든 이들 또한 그 방식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사재기니 80% 할인이니 하는 따위의 반문화적(反文化的) 행태를 벌이는 것도 출판계요, 조선시대 사관(史官) 대신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 또한 출판계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큽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책의 주요 독자층은 30대 후반에서 50대까지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10대야 경쟁몰입교육의 희생자라 당연하다고 치부하더라도 20대들이 책을 안 읽는 것은 나라의 미래가 어떠할지 불을 보는 것과 같아 참담합니다.

언젠가 퇴근 무렵, 사람 많은 지하철에 오르는 순간 부동자세로 똑같이 머리를 숙이고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스마트폰’에 몰입한 채 이웃들에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승객들을 보며 등골이 오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도서정가제를 왜 논의하는지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오늘의 대한민국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해답을 내는 일은 쉬울 것입니다. 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해 책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고민한다면 도서정가제가 경제적 관심사가 아니라 문화적 관심사, 나아가 교육과 겨레의 철학적 관심사임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당연한 일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도서정가제 논의 결과가 궁금하지 않고 돈 되는 책을 찾아 눈에 쌍심지를 켤 뿐입니다.
2014-10-2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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