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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의 사피엔스와 마음] 방송 상담소의 뒷면/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하지현의 사피엔스와 마음] 방송 상담소의 뒷면/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2022-04-04 20:32
업데이트 2022-04-05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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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상담 프로그램은 인기가 있는데 유명인의 이야기는 특히 화제가 된다. 김윤아씨가 어릴 때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는데 목공소에 가서 매를 사이즈별로 맞춰 왔다고 말했다. 배우 한가인씨는 어릴 때부터 언니에게 당한 학대를 밝히며 왜 일찍 결혼하게 됐는지를 고백했다. 그 중심에 오은영 정신과 의사가 있다. 행동 조절이 안 되는 아이들을 분석하고, 부모에게 해결책을 줘 변화시켜 온 분으로 성인 대상의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나온 이야기들이었다. 방송에서 유명인들은 아픈 과거를 말하고, 오 박사의 명쾌한 분석과 따뜻한 위로에 힐링을 경험했다. 주로 성인을 위주로 상담과 치료를 해 온 사람 입장에서 “그런데 말입니다” 하고 조심스러운 염려를 말하고 싶어졌다.

일단 아이들의 행동 문제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살아온 시간이 적고, 아이들은 순수하며 부모는 절박하다. 숨길 것도 없고 문제가 있다 해도 실마리만 잘 찾아내면 의외로 잘 풀린다. 반면 어른은 다르다. 살아온 시간이 길다 보니 어릴 때 기억은 조금씩 변하고 달라진다. 과거를 지금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이해 당사자마다 기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마음 아픈 사건이 견딜 만하게 줄어들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색채가 강해져 2차 보정이 된 사진으로 저장된다. 이렇게 형성된 결과물은 지금의 나를 설명하고 구성하는 하나의 기둥이 된다. 더욱이 앞으로도 조금씩 변해 나갈 것이 과거의 나에 대한 기억이다.

한편 힘든 얘기지만 진짜 무의식에 억제된 내용은 아니다. 그건 의식에서 감당하기 힘들기에 깊숙이 처박힌 채 자아에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친다. 이번에 공개한 이야기는 자기 마음 안에서는 이미 오래전 정리한 개인 서사였다. 다만 한 번에 튀어나와 버리면 감당이 안 될 수 있는데 방송과 같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말하는 순간은 후련하고 지지받는 기분이지만, 이후의 시간 동안 복잡한 후폭풍이 생기곤 한다. 한 번 말한다고 인생은 바뀌지 않고 관계도 달라지지 않는다. 정신치료 중 깊은 속내를 드러낸 다음 감당하기 힘들어하며 예고 없이 결석을 하는 분이 많다. 그래서 정신치료는 양파 껍질을 위에서부터 한 겹씩 벗기듯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수술로 병소는 다 제거했는데 환자는 위중해지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되기에.

이에 반해 방송 상담소는 마치 공개된 장소에서 진행하는 라이브 수술 같아 보여 걱정이다. 공개 상담은 당사자뿐 아니라 연관된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셀럽의 부모. 가족으로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가 하루아침에 가해자로 알려지게 됐다. 고백한 사람은 분했던 과거사를 인정받게 됐지만 가족들은 이걸 잘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이 부분도 염려가 된다. 이렇게 방송에서 일회성으로 이루어지는 상담소는 호기심의 장이 돼 소모되고, 남는 건 본인과 가족이다. 과거의 힘든 기억은 이런 식으로 한 번에 공개적으로 해결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동안 힘든 기억을 안고 가는 게 버거웠다면 오래 걸리지만 은밀한 개인 상담을 받으시기를 권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다.

2022-04-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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