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현장] 미국, 언론, 거짓말

[나와, 현장] 미국, 언론, 거짓말

이정수 기자
이정수 기자
입력 2022-02-10 20:32
수정 2022-02-11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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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남부 군관구 제150소총사단 소속 T72B3 전차가 로스토프주 카다모프스키 사격장에서 군사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2022.1.27 로스토프주 타스 연합뉴스
러시아 남부 군관구 제150소총사단 소속 T72B3 전차가 로스토프주 카다모프스키 사격장에서 군사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2022.1.27 로스토프주 타스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와 맞닿은 동쪽, 벨라루스 국경인 북쪽, 크림반도가 있는 남쪽 등 3면에서 10만여 대군이 몰아닥쳤다. 출격 신호만 기다리던 T72B3 전차는 단단하게 얼어붙은 평원을 거침없이 내달렸다. 수도 키예프 함락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이틀. 군인을 제외한 민간인 희생자만 5만여명을 헤아렸다.

미국 및 영국 정부와 언론의 경고대로라면 이미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은 이 시나리오는 그러나 현실이 되진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국제전으로 번질지 모를 우크라이나 위기에 관한 정보들은, 대부분의 해외 소식과 마찬가지로 다분히 미국 중심의 필터링을 거친 후 한국에 전해진다. 미국 주류 언론이 쏟아내는 ‘믿을 만한’ 보도와 ‘합리적인’ 예측을 국내 언론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기 일쑤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내 미승인국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무장대원들이 도네츠크시 외곽의 한 사격장에서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2021.12.14 도네츠크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내 미승인국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무장대원들이 도네츠크시 외곽의 한 사격장에서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2021.12.14 도네츠크 로이터 연합뉴스
한국에서 7000여㎞ 떨어진 우크라이나 상황을 우리는 체스 경기를 관전하듯 바라본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에서 일개 폰(졸)의 생사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러시아의 입장은 ‘주장’으로 치부될지언정 보도는 이뤄진다.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는 서방 언론을 통해 취사선택된 뒤에야 간간이 전해진다.

이번 사태의 핵심이자 발단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은 어떨까. 7년 전 ‘민스크 협정’을 통해 자치권을 인정받은 친러 정부가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서방의 시각에선 여전히 ‘반군’이다. 그곳 주민들의 외침은 서방 언론이 주목하지 않기에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물론 독재 정권에 아부하는 관영 언론보다 자국 대통령 비판도 서슴지 않는 미국 언론이 훨씬 믿을 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안에서 미국의 시각이 옳다는 의미가 될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탱크에 탑승한 채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의 한 훈련장에서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 2022.2.8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 제공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탱크에 탑승한 채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의 한 훈련장에서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 2022.2.8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 제공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초 카자흐스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러시아가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것이 일례다. 옛 소련권 6개국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통한 합법적 파병이었지만 서방 언론은 러시아군이 이를 빌미로 장기주둔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러시아는 그러나 이를 비웃듯 파병 일주일 만에 카자흐스탄에서 철수했다.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끊임없이 경고하는 것은 러시아의 음모를 미리 파악하고 그것을 폭로함으로써 전쟁을 억지하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있다. 미국에서 전해지는 말들이 모두 진실이고 러시아의 침공 계획이 사실일지라도, 우크라이나 사태는 결국 미국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끝나길 바란다. 우리에겐 ‘없는 존재’인, 화약고 안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주민들을 위해.

이정수 국제부 기자
이정수 국제부 기자
2022-02-1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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