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나와, 현장] 저항하지 않은 사람들의 최후

[나와, 현장] 저항하지 않은 사람들의 최후

이정수 기자
이정수 기자
입력 2022-03-17 20:06
업데이트 2022-03-18 06:5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러시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모스크바 크렘린이 모스크바강 뒤로 보이고 있다. 2022.3.5 모스크바 AP 연합뉴스
러시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모스크바 크렘린이 모스크바강 뒤로 보이고 있다. 2022.3.5 모스크바 AP 연합뉴스
코로나 악몽이 시작되기 바로 전해에 휴가를 틈타 러시아에 갔었다. 묵직한 굉음을 내며 한국의 최소 2배속으로 오르내리는 러시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 끝내 적응 못 한 어머니는 여행을 마친 뒤 “소련엔 무섭고 사악한 사람들만 사는 줄 알았는데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더라”며 웃었다. 부모님 세대 어릴 적엔 ‘공산국가 사람들 머리엔 뿔이 달렸다’는 반공 교육을 받았을 장면을 상상하니 나도 웃음이 났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기사마다 즐비한 “공산주의 박멸” 댓글에서 한국 내 뿌리 깊은 반공 정서가 엿보인다. 여기엔 한 가지 오해가 있다. 러시아 하원 의석 70%를 독식한 통합러시아당은 중도우파를 표방하는 민족주의 정당이다. 공산당과는 이념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사실상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을 소련 공산당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북한이나 중국처럼 서방의 언론·소셜미디어를 원천 봉쇄하진 않지만, 관영매체를 활용해 선전·선동하는 것은 러시아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지난 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시위에서 경찰관들이 한 시위 참가자를 체포하고 있다. 모스크바 AFP 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시위에서 경찰관들이 한 시위 참가자를 체포하고 있다. 모스크바 AFP 연합뉴스
그 결과는 러시아 국민 58%가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군사 작전에 찬성한다는 여론으로 나타난다. 반대 의견은 23%에 그친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한다.

그럼에도 전쟁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서는 용기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인권감시단체 OVD인포에 따르면 침공 이후 러시아에서 체포된 반전 시위 참가자는 지난 13일 기준 1만 4000명을 넘었다. 다만 전쟁을 옹호하는 친푸틴 시위 규모에 비하면 소수 목소리에 그친다. 침공 후 70%대로 오른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러시아 국민 다수가 자국의 독재자를 제어하기는커녕 방조 혹은 독려하는 현실을 보여 준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부에 위치한 푸시킨 광장의 한 맥도날드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달 24일 시작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맥도날드를 비롯해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 사업 철수를 이어가고 있다. 모스크바 AFP 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부에 위치한 푸시킨 광장의 한 맥도날드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달 24일 시작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맥도날드를 비롯해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 사업 철수를 이어가고 있다. 모스크바 AFP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의 초고강도 대러 제재 직후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탈(脫)러시아를 선언했다. 옛 소련 심장부에 꽂힌 ‘자유의 상징’ 맥도날드 1호점의 32년 만의 폐점은 러시아 경제가 소련 시절로 회귀할 것을 예고하는 한 장면이다. 푸틴 대통령의 독재를 용인한 러시아 국민들에겐 이제 소련 붕괴 당시만큼이나 혹독하고 어두운 터널이 기다리고 있다.

비판도 저항도 하지 않는 다수가 러시아에만 있을까.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두르려는 자, 그 아래서 한 자리씩 차지하려는 아첨꾼들은 가까운 곳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도 콩고물을 기대하며 눈치 보는 사람들, 무력감을 핑계로 침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결국 주어지는 건 ‘유사 빅맥’뿐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여러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정수 국제부 기자
이정수 국제부 기자
이정수 국제부 기자
2022-03-18 29면

많이 본 뉴스

‘금융투자소득세’ 당신의 생각은?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의 투자로 5000만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했을 때 초과분에 한해 20%의 금투세와 2%의 지방소득세를, 3억원 이상은 초과분의 25% 금투세와 2.5%의 지방소득세를 내는 것이 골자입니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제도 도입과 유예,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일정 기간 유예해야 한다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