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서울쥐에게는 시골이 먹을 것도 부족하고 볼거리도 없는 곳이었다. 서울처럼 음식점도 보이지 않고 놀 만한 곳도 없었다. 그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었다. 서울이 아니어서 보잘것없는 곳이란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서울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서울을 중심에 놓고 생각했다. 말을 통해서도 드러냈다. ‘스가(아래아)올’이었고, ‘스굻’, ‘스굴’이기도 했던 ‘시골’은 ‘새로운 고을’을 뜻하는 말이었다. 좋은 의미의 ‘새로움’이 아니었다. 단지 본래 고을에서 떨어진 마을을 가리켰다.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을 뜻했다. 이곳은 발달이 덜 되고 부족한 곳처럼 여겨졌다.
이 시골은 곧 지방(地方)이기도 했다. 시골에는 그래도 정감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지방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지방 위에는 늘 서울만 자리하고 있었다. 지방은 서울에 종속된 곳이어야 했다. 국어사전의 뜻풀이에도 ‘서울 이외의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새겨졌다. 서울 이외 지역의 도시들은 ‘지방 도시’가 됐고, 서울 이외 지역의 대학들에는 ‘지방 대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치를 낮추는 표지들이었다. ‘지방’은 서울이라는 ‘중앙’의 반대쪽 아래에 자리해 왔다.
‘지방’의 새로운 자리매김이 필요했다. ‘지방’은 구시대적인 표현이라는 주장들이 이어졌다. ‘지방’은 낮고 지도를 받아야 하는 곳이란 의식이 남아 있는 말이라고 했다. ‘지역’(地域)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역’은 ‘지방’처럼 중앙에 속해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일정하게 나눈 지역이고 영역이었다. 지방이 중앙의 통제를 받는 수직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지역은 수평적이라는 것이다.
서울에 ‘지방’이란 이름을 가진 행정기관들이 수없이 보인다. 서울지방경찰청, 서울지방국세청, 서울지방병무청,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지방’이 ‘지역’의 의미도 조금 가져갔다. 그래도 ‘지방’은 불필요할 때가 많다. 신중해야 한다.
wlee@seoul.co.kr
2020-07-0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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