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언파만파] 보는 사전이 아니라 읽는 사전

[이경우의 언파만파] 보는 사전이 아니라 읽는 사전

이경우 기자
입력 2020-09-13 20:42
수정 2020-09-14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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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국어사전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첫 번째는 단어의 뜻을 아는 데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맞춤법을 비롯한 어문 규범에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올 수 있다. 상황에 따라 표준 발음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띄어쓰기가 궁금해서 사전을 찾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 특정한 단어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궁금해졌을 때도 사전을 찾게 된다. 사전의 내용들은 다른 책들에 있는 것보다 더 굳은 신뢰를 받을 때가 많다.

이런 태도가 반영된 듯 사전의 ‘전’은 ‘법’을 뜻하는 ‘전’(典) 자다. ‘고전’(古典)이나 ‘법전’(法典), ‘경전’(經典)처럼 중요성과 권위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한데 사전은 고전과 법전은 물론 다른 책들과 다른 언어적 대접을 받는다. ‘고전’이나 ‘법전’은 ‘보다’, ‘읽다’와 모두 어울려 쓰이는데, ‘사전’은 그렇지 않다. ‘사전을 본다’라고는 해도 ‘사전을 읽는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신문이나 잡지류도 ‘보다’, ‘읽다’와 어울리는데, 사전은 ‘보다’만 된다. 사전은 ‘읽는’ 게 아니라 ‘보는’ 책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사전을 읽지 않고 보는 데 더 집중했는지도 모른다.

‘읽다’는 “문장이나 글의 뜻을 헤아려 알다”라는 말이다. 읽는 과정에서는 내용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견도 끊임없이 개입시킨다. 자신이 가진 기준과 상식에 따른 비판 행위가 지속된다. 그렇지만 사전을 볼 때는 이런 과정이 생략될 때가 많은 것이다. 사전의 독자들은 사전을 비판적이거나 주관적으로 보려는 의도가 별로 없다. 의미와 맞춤법, 어원 등을 ‘확인’해 보고 만족하는 데 머무르려는 경향이 강하다. “모르면 사전 찾아봐”라고 하고, 사전을 의심 없이 본다.

최근 ‘사전 보는 법’이란 책을 낸 정철씨는 사전의 미래는 ‘읽는 사전’에 있다고 말한다. 기계적인 뜻풀이를 보려고 사전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뜻풀이가 필요하다고 사전들에 주문한다. 색다른 시도를 한 일본의 국어사전(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을 소개하면서. 많은 비판도, 호응도 받은 이 사전은 ‘동물원´을 이렇게 풀이했다. “생태를 대중에게 보여 주는 한편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잡아 온 조수나 어충 등에게 좁은 곳에서 생활할 것을 강요하며 죽을 때까지 기르는 인간 중심의 시설.” 독자들에게는 포털의 사전고객센터에 ‘20세기에 출간된 사전 내용을 아직도 보여 주는 건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는 의견을 내라고도 한다. 사전은 읽어야 하고, 읽히는 사전을 만들자는 얘기다.

wlee@seoul.co.kr

2020-09-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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