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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가을 본색/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가을 본색/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6-10-14 22:42
업데이트 2016-10-1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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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채기와 웃음만 속일 수 없는 게 아니다. 계절이 곰삭는 냄새도 숨길 재간이 없다. 연두에서 진초록까지 잎사귀 색의 변화에 시력을 맞추다 보면 봄여름은 가고 없다. 그 자리에 문득 단단한 열매로 남는 것이 가을 냄새다.

시력도 미각도 맹추인 내게 용한 재주는 하나 있다. 이맘때 저녁 공기의 정체는 눈을 감고도 귀신처럼 알아챌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아파트 화단 언저리에만 서 있어도 코끝에서 시월은 속속들이 낚인다.

어느 집에서 내다 널었는지 근 보름 돗자리에서 바짝 약 올랐던 홍고추는 어느새 가랑잎 소리를 낸다. 가을볕이 어떻게 구슬렸으면 짚불 타는 냄새로 순해졌는지. 콩 비린내에 벼 이삭 패는 냄새 비슷한 것은 해바라기. 밤 공기에 들기름 냄새를 설핏 뿌리는 것은 네댓 포기 심겨진 들깨. 누군가는 재미로 심었겠지만 재미 삼아 자란 게 아니었다고, 누우런 꼬투리로 항변하는 중이다.

가을은 오색단풍으로 먼저 온 적이 없다. 생명 있는 것들 죄다 발 동동 구르며 속살을 마저 태우는 냄새로 온다. 너는 지금 안간힘으로 무얼 태우고 있느냐고 묻는 것도 같은, 호미로 가래로 댐으로도 못 막을 가을 본색.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6-10-1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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