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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이세돌의 돌(乭)과 둘(乧), 톨(㐋), 할(乤)/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세돌의 돌(乭)과 둘(乧), 톨(㐋), 할(乤)/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16-03-09 22:50
업데이트 2016-03-0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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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알파바둑(AlphaGo)에 첫판을 내주기는 했지만 이세돌(李世乭)은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세상의 돌’이라는 뜻이니 바둑으로 세상을 평정할 조건을 벌써부터 갖추어 놓은 것이다. 돌(乭) 자는 우리가 만든 한자(漢字)다. 돌 석(石)이 의미를 담고 있는 요소라면, 새 을(乙)은 리을(ㄹ) 받침의 음가를 이룬다. 중국 언론은 돌의 의미를 취해 ‘이세석’(李世石), 일본 언론은 음을 취해 ‘이세도루’라 표기하고 있다.

이두, 향찰, 구결에서 보듯 우리는 일찍부터 한자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썼다. 돌(乭) 같은 고유 한자도 이미 ‘삼국유사’에서부터 나타난다. 한자가 유입된 초기에는 순우리말 사람 이름이나 땅 이름을 표기하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오주 이규경(1788∼1863)이 각각 ‘아언각비‘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적지 않게 다루었다.

학계에 따르면 이렇게 만들어진 고유 한자는 1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중국에는 없는 사람 이름과 땅, 동물, 식물, 관직, 생활도구 등의 이름이 많다. 지금도 사람 이름으로 심심치 않게 쓰는 글자가 이세돌의 ‘돌’ 자다. 과거 돌은 역시 고유한자인 쇠(釗) 자와 짝을 이루어 돌쇠라는 우리말 이름을 표기하는 데 쓰였다. 돌과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고유 한자가 갈(乫), 걸(乬), 둘(乧), 톨(㐋), 할(乤) 등이다.

한자와 한글을 혼합해 새로운 글자를 만든 것도 있다. 임꺽정을 표기할 때 쓰는 걱(巪) 자가 그렇고, 놈(㖈), 둑(㪲), 둔(䜳), 둥(㪳), 억(㫇) 자가 그렇다. 한자에 쌀 미(米) 자가 있지만, 쌀(㐘)이라는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쓴 것도 흥미롭다.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이 보위에 오르기 전 잘산군(乽山君)이었는지, 자을산군(者乙山君)이었는지 종종 논란이 일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일관되게 자을산군이라고 표기했지만,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잘산군에 봉해졌다’는 표현이 있다. 잘산군이라고 부르되 공식 표기는 자을산군이라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돌고래 국(䱡), 족제비 광(㹰), 망둥어 망(䰶), 가자미 첩(鯜), 민어 회(鮰), 대구 화(夻) 자 등 동물과 어류를 이르는 글자도 적지 않게 만들어 썼다. 중국에는 없거나 흔치 않아 글자가 없거나 있어도 용례를 찾기 어려운 글자였을 것이다.

알파바둑 열풍이 일본말 ‘고’(碁·기)가 국제어로 완전히 자리를 굳히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부수가 돌 석(石)인 이 글자는 돌을 사용하는 이 게임의 특성을 직관적으로 보여 준다. 게다가 일본은 현대적인 바둑의 룰을 정착시킨 것도 사실이다. 반면 한자의 바둑을 가리키는 나무 목(木) 변의 기(棋)자는 상대적으로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 낡은 글자다. 한국에는 순우리말 ‘바둑’이 있다. 이번 기회에 바둑이라는 한국말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6-03-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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