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된 ‘빅블러’(Big Blur)의 대표 사례이기도 하다. 블러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컴퓨터를 만들던 애플이 휴대폰 사업에 진출하고 이제는 TV(애플TV+)와 자동차(애플카) 사업까지 넘보는 세상이다. 넷플릭스는 게임산업에 뛰어들었다.
KB금융이 알뜰폰 사업에 공식 진출했다. 2019년 4월 처음 시장을 두드린 지 4년 만이다. 금융위원회는 어제 KB금융의 이동통신서비스 리브엠(LiivM)에 사실상 정식 인가를 내줬다. 법 개정 절차만 남겨 두고 있다. 금융과 통신이 결합하면 여러 변주가 가능하다. 통신비 납부 실적으로 고객 신용을 분석해 예·대출 금리 추가 혜택을 줄 수 있다. 거꾸로 은행이나 카드 사용 실적으로 통신비 할인도 가능하다. 은행은 신규 고객 유치는 물론 기존 고객을 붙잡아 둘 수 있어 좋고, 소비자는 편익이 늘어 좋다. ‘땡겨요’(음식배달앱 서비스)를 하고 있는 신한금융도 알뜰폰을 ‘땡길’ 태세다.
토스가 환전 업무를 하다가 아예 은행업(토스뱅크)에 진출하고, 간편결제를 넘보던 네이버는 대출 업무(네이버파이낸셜)까지 하고 있다. 핀테크에 영토를 야금야금 빼앗기던 금융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셈이다.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벌써 시장에는 연간 통화료가 무료인 알뜰폰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탐욕스런 금융의 골목상권 침해’라는 반발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당장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이 KB와 금융위를 성토하고 나섰다. 소수 기업의 시장 지배력 확대와 문어발식 확장도 빅블러의 어두운 면이다. 단순히 저가 출혈 경쟁만 가져온다면 KB 알뜰폰은 박수받기 힘들다. 금융과 통신의 결합만이 시도 가능한 편리하고 발칙한 통신 서비스, 그리고 금융 신상품까지 이어져야 한다. ‘메기 KB’의 혁신과 상생을 기대한다.
2023-04-13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