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도모미 부모의 한국 사극 사랑/이종수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열린세상] 도모미 부모의 한국 사극 사랑/이종수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입력 2010-06-04 00:00
업데이트 2010-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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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이종수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한류 덕분인지 대학 캠퍼스에 중국, 일본, 타이완에서 온 유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도모미는 우리 학교 대학원에 유학 온 성격이 밝고 예의바른 일본 여학생이다. 2004년 일본 후지TV에서 방송한 ‘천국의 계단’을 보고 한류 팬이 되었고, 유학까지 오게 됐다. 도모미가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여자주인공이 술을 먹고 토하는 장면을 보고 문화적 쇼크를 받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 ‘자유분방한’ 한국 여성들의 술 문화가 매우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했다고 한다.

도모미의 부모님 역시 한국 사극 팬이다. 2004년 ‘겨울연가’가 일본 중년층 여성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붙였다면, 2005년 ‘대장금’, 2007년 ‘주몽’, 최근 ‘이산’에 이르는 한국 사극은 일본의 중장년 남성과 여성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본 최대 DVD 렌탈숍인 쓰타야(Tsutaya) 집계에 의하면 최근 가장 인기있는 DVD는 한국 드라마이다. 그중에 사극이 30%를 웃돌고 있다. NHK 위성채널에서 방송되는 ‘이산’도 ‘대장금’을 능가하는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도쿄 가까운 곳에 사는 60대의 도모미 부모님들은 한국 사극을 빌려 매일 저녁 함께 보는 게 큰 낙이라고 한다. 가끔 아버지가 혼자 먼저 드라마를 보고 그 내용을 엄마에게 설명을 하면 큰 말싸움이 날 정도다. 열혈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금기시되는 ‘스포일러성’ 정보를 미리 흘린 탓이다. 일본인 부부의 일상 속에 즐거움으로 녹아들어간 한국 사극의 인기를 실감하게 된다.

도모미 부모님이 한국 사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등장 연령층의 폭이 넓고, 순수하고, 폭력이나 선정적 장면이 적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 사극은 일본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시청하는 가족 장르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사무라이가 주로 등장하는 일본 사극보다 내용이 다양하고, 호쾌하면서 재미있다고 한다.

한국 사극이 일본인에게 다가가는 또 다른 매력은 역동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다. ‘대장금’은 운명을 개척해 가는 밝고 적극적인 여성의 이야기이다. ‘주몽’에는 여성 영웅 소서노가 있고, ‘이산’에는 송연이 있다. ‘선덕여왕’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주인공들의 매력은 말할 것도 없다. 섬세하지만 강한 여성 주인공, 평화지향적 이상을 펼치는 정치 리더들은 다른 나라 사극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사극은 시대적 배경은 과거이지만, 담고 있는 미학은 현대적이고 코스모폴리탄적이다. 섬세하고 밀도 있는 감정과 인간관계 묘사, 아름다운 영상과 잘 짜인 스토리텔링 역시 한국 사극의 경쟁력이다.

이것만으로 한국 사극의 붐 전체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왜 일본에서 인기있는 한국 사극이 타이완과 중국에서는 별 인기가 없는 것일까. 해답은 바로 안정된 일본 중장년층에 있다. 국제적인 문화 경험이 많고, 과거 아시아권 역사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동시에 새로운 감성을 찾는 일본 중장년층의 기호에 한국 사극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반면 중국과 타이완 한류를 이끄는 세대는 인터넷으로 최신 트렌디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는 젊은 층이다. 이들에게는 한국의 서구화된 소비문화가 오히려 매력적인 것이다.

이제 한류 드라마는 아시아 지역에서 공유하는 ‘문화 코드’가 되었다. 문화학자 클리퍼드는 “문화는 여행이다.”라고 말했다. 어느 한 곳에서 폐쇄적으로 생겨난 문화는 없다는 말이다. 사람과 문화의 자유로운 이동이 글로벌 시대 대중문화 융합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90년대 말 한류 붐을 지핀 한국의 댄스뮤직과 트렌디 드라마는 서구와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의 ‘퓨전 사극’ 역시 서구의 트렌디한 요소와 여성적 섬세함을 가미하면서 해외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게 됐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에서 가족과 동료들이 함께 시끌벅적하게 밥 먹고, 술 마시는 장면이 인상적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그저 그런 일상이지만, 그들에게는 사람 사는 따뜻한 모습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따뜻함, 외국 문화를 극성스럽게 수용해서 재창조해 내는 역동성, 이것이 외국에서 통할 수 있는 한국 드라마의 인기 요인이 아닐까.
2010-06-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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