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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사랑도 학습이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사랑도 학습이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입력 2012-01-17 00:00
업데이트 2012-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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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김수현의 최근 드라마들은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과 마음을 서서히, 그러나 크게 바꿔놓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마친 ‘천일의 약속’은 치매에 걸린 수애를 끝까지 헌신적으로 사랑해준 김래원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지만, 진짜 메시지는 고통스러운 사랑을 선택한 아들을 이해하고 또 사랑하려고 애쓰는 엄마 김혜숙의 마음을 통해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사랑을 이해하고 또 서로 사랑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와 의식의 흐름 속에서 전혀 강요 없이 자연스럽게 드라마 속에 녹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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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바로 이전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우리 사회의 터부와 몰이해의 대상인 동성애 문제를 가족 이야기 속에서 따뜻한 이해와 사랑으로 감쌌다. 또 2008년의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중년 여성의 심리 문제를 그냥 나이든 여자의 히스테리가 아니라, 가족과 사회가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배려해야 하는 중요한 그 무엇이라는 메시지를 굳이 페미니즘을 들먹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경쟁과 효율의 가치에 매몰된 우리 사회에서 사랑은 무엇이고,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성찰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김수현의 최근 작품과 같은 좋은 드라마 말고는 그리 마땅치 않다. 좋은 책들과 좋은 영화, KBS의 ‘아침마당’과 같은 교양 프로그램 정도랄까. 이해와 헌신의 사랑을 터득하는 법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영역은 애당초 많지도 않고 그나마 더욱 줄어들고 있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 인터넷 포털의 연예와 연애 기사들은 지치고 권태에 빠진 사람들을 욕망의 대상으로서 사랑을 가지고 놀 수 있게 할 뿐이다.

이상하리만치 우리 사회의 학교에서는 민주주의를 가르치지도 않지만 사랑도 가르치지 않는다. 시험 잘 보는 법과 취업 잘하는 법만을 가르친다. 학교 교육의 붕괴는 근본적으로는 학교에서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와 사랑이 결핍된 채 경쟁과 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린 어린 학생들은 이제 만연한 폭력과 왕따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여기다 대고 왕따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사회는 사랑 대신 처벌이라는 또 다른 폭력을 가하려 한다.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부분 사랑하는 법을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운다. 그래서 남녀 간의 사랑은 이해와 헌신의 단계에 이르기 전에 욕망과 애정의 본능 단계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파열을 겪으며 생채기를 내고, 때로는 불행한 범죄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를 하고,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혹 이별을 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사전에 학습하는 법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 영문도 모른 채 나이가 차면 결혼하고 애 낳고 산다. 성장 배경이 다른 남녀가 같이 살면서 가족을 이루는 혼인생활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부부 사랑을 영위해야 하는지, 자식 사랑은 어떻게 지혜롭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학습이나 성찰의 기회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많은 경우 부부 간에, 부모 자식 간에 티격태격 불협화음을 내면서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 더미들을 가슴속에 묻고 살거나, 또는 소중한 사랑의 시간과 기회가 흘러간 뒤 후회를 한다.

최근 일부 종교, 사회단체들이 여는 아버지학교나 부부 사랑 프로그램이 참가자들에게 사랑의 깨달음을 주고 있다. 사랑 프로그램의 핵심은 사랑의 언어 배우기이다. 내가 사랑을 받을 때 느끼는 고유의 언어가 있듯이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도 그만의 고유한 사랑의 언어가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려 하고, 그의 언어에 맞춰 내 언행을 실천할 때 이뤄진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자녀에게 용돈 듬뿍 주고 공부하라고 다그친다고 해서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다. 인정하고 존경하는 말을 들을 때 사랑을 느끼는 배우자에게 명품 선물을 백날 해봤자 사랑은 물거품이다. 사랑은 그래서 경청과 성찰, 소통의 학습 과정이다.

2012-01-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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