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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히틀러와 입학시험/김다은 추계예술대 교수·소설가

[열린세상] 히틀러와 입학시험/김다은 추계예술대 교수·소설가

입력 2012-01-21 00:00
업데이트 2012-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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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한 청년이 화가의 꿈을 안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흘러들었다. 1907년 가을, 빈 조형예술아카데미 소속 일반화가 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르게 된 18세의 그 청년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낙원으로부터의 추방’ 등 실기시험에는 합격했으나, 2차 면접에서 실패하고 만다. 풍경화나 건축화에는 뛰어났지만, 초상화에는 소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은 화가가 될 자질이 없다고 면접관들이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최근 동유럽 여행 때, 오스트리아와 폴란드의 서로 다른 현지 가이드들이 히틀러에 대해 들려준 공통된 내용이다. 히틀러는 입학시험에 불합격하고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3류 화가 노릇을 하면서 빈에서 외로움과 배고픔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군대에 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이를 거부하다 군사재판에 출두하게 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는 독일 군대에 자원입대를 하는데, 이것이 파시스트 히틀러 행로의 시작이었다.

만약 히틀러가 예술아카데미 입학시험에 합격했다면? 나치당의 운명과 독일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체코 및 폴란드 침공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발발, 프랑스 점령, 덴마크 장악, 러시아 진격과 패배 등 전 세계가 전쟁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휩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大) 독일의 야망 아래 자행된 유대인 대량 학살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의 연쇄적 영향에 의해 우리는 전혀 다른 21세기를 맞고 있을 것이다.

히틀러가 화가가 되었다면 예술의 지형도도 달라졌을 것이다. 당시 오스트리아 제체션(분리파)의 중심에 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영향과 에곤 실레 등과의 교우관계를 통해 히틀러는 표현주의 화가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다면 여행객들은 폴란드의 오슈비엥침 수용소(‘아우슈비츠’라는 표현은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난 후 독일식 발음으로 바꾼 것이다)가 아니라 히틀러 미술관으로 즐거운 발길을 옮기게 됐을지도 모른다. 화가 히틀러의 인생살이와 예술을 다룬 책이나 영화 ‘페인터’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독일에 대한 저항으로 오스트리아인들 사이에 애창되던 에델바이스를 트랩 대령의 입을 통해 부르게 했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히틀러가 세계적인 화가가 될 수도 있었고 그래서 역사가 다른 길로 흐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요즘 각 대학들에서 입학시험이 진행되고 있어서이다. 얼굴을 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히틀러를 예술 밖으로 내친 면접관들이 실수를 한 것인지, 히틀러에게 진정한 예술혼이 없음을 알아챈 그들의 선견지명을 놀라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히틀러가 입학시험에 불합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초상화 때문이라는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다. 단지 풍경화 속에 건축물과 배경만 있을 뿐 사람이 그려지지 않아서 “면접관들은 회화과 대신 건축과 입학을 추천했는데,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수인 과정을 당시 히틀러는 중학교를 중퇴했기에 낙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초상화는 현지인들의 입으로만 전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오슈비엥침 수용소 관람 후, 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폴란드의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의 이야기를 다룬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틀어주었다. 유대인 피아니스트는 독일 장교와 오이지 통조림 앞에서 절체절명의 연주를 하게 되는데, 그 곡이 쇼팽의 발라드 1번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폴란드 현지 한국인 가이드에게 낯선 나라에 정착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았다. 대학입학시험 때 자신이 획득한 점수가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를 선택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대학입학시험이 한 개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지형도를 바꾼다는 것을 히틀러뿐만 아니라 평범한 가이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시철이다. 인간과 세계의 미래를 향한 지극히 중대한 기획이 진행되고 있다.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수많은 선택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 선택의 결과들을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보게 될 것이다.

2012-01-2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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