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열린세상] ‘내 아이’의 문제 학교폭력/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열린세상] ‘내 아이’의 문제 학교폭력/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입력 2012-01-31 00:00
업데이트 2012-01-31 00:2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십수 년 전 필자가 가족들과 함께 영국에 유학하던 시절이었다. 둘째 딸이 런던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반에서 유색인종으로는 유일무이했다. 어느 날 같은 반 영국 아이가 이유도 없이 딸애 얼굴에 침을 뱉는 불상사가 생겼다. 필자는 교장에게 담담한 내용의 장문 편지를 보냈고 교장은 전교생이 모이는 전체 조회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엄정한 주의를 내렸다. 담임 교사도 문제의 영국 학생과 그 부모를 학교로 불러 경고를 주었고 이런 조치 사항을 필자에게 전달했다. 이후 주기적으로 학급에서 ‘인종차별’과 관련된 교육이 실시됐고, 매달 이런 교육 내용과 학급에서의 조치가 기록된 가정통신문이 배달됐다. 덕분에 딸아이는 귀국할 때까지 학교 생활을 무난히 끝마쳤다.

이미지 확대
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왕따나 차별을 비롯한 학교 폭력 사태가 심각하다. 이를 이기지 못한 학생들 몇몇이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진 뒤에야 실상들이 언론에 알려지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이유는 상황이 뒤늦게 알려지기 때문이다. 피해 학생들은 왕따를 당하거나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보복이 두려워 부모나 선생님에게 사실을 숨기게 된다. 주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급우들도 보복이 두려워 모른 체한다고 한다. 학생과 부모, 학생과 학교, 그리고 부모와 학교 모두의 소통이 단절된 총체적인 난국의 형태라 할 수 있다.

전국 학교자치위원회가 최근 3년간 심의한 학교 폭력 조치 현황에 따르면 2만 2000여 건에 달하는 학교 폭력 사건 중 60% 이상이 ‘사회봉사 등 단순 봉사 활동 명령’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로 학교 폭력 재발과 추가 피해자가 늘어났다고 지적하며 심할 경우 형사처벌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물론 처벌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이들은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폭력에 대한 관심이 적기 때문’이라며 처벌에 무게를 두는 해결 방법은 더욱 많은 학교 폭력을 발생시킬 뿐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얘기다. 미국은 47개 주가 ‘왕따 방지법’을 만들었고, 독일 같은 나라는 폭행 사건 세 번이면 무조건 퇴학시키도록 하는 ‘삼진 아웃’ 벌칙을 제정했지만 학교 폭력은 줄지 않는다고 한다. 사후 처벌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학교 폭력 문제는 이미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이슈화돼 왔다. 1995년 서울의 한 고등학교 학생이 선배들에게 구타와 함께 괴롭힘을 당하다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들이 뒤늦게 학교에 찾아가 가해 학생들의 처벌을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지금처럼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의 호통에 정부는 온갖 대책을 쏟아냈으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학교 폭력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학교 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17년의 세월 동안 정권마다 고민해 온 문제다.

청소년기는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 한다. 이러한 격동기에 학교 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부모와 학교와 단절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기준 학교 폭력 피해 학생 수는 1만 3748명, 가해 학생 수는 1만 9949명으로 나타난 반면 2012년 1월 기준 학교에 배치된 전문 상담교사는 883명에 불과하다. 한국청소년상담원에 따르면 긴급 상담이 필요한 고위험군 청소년은 93만여명에 달하나 2010년 기준 상담을 받은 청소년은 12만 800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전문 상담 인력 1명당 1000명을 상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학교 폭력은 근본적으로 청소년들의 심리와 문화를 이해하고 부모와 학교가 유기적으로 소통하면서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며칠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학교 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했다. 학교 안에 중요한 해결 포인트인 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그 출발점일 것이다. 미래의 성장 동력인 청소년에 대해 일과적인 미봉책이 아니라 꾸준하고 일관성 있는 ‘어른’들의 책임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는 향후 ‘내 아이’가 살아갈 사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2-01-31 30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