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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고진감래(苦盡甘來)/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열린세상] 고진감래(苦盡甘來)/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입력 2012-04-13 00:00
업데이트 2012-04-1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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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고진감래(苦盡甘來), 즉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힘든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람이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곤 한다. 하지만 신경생물학적으로 본다면 이 말만큼 우리의 행동을 적절히 설명하는 말도 드물다. 실제로 우리의 뇌는 고통 뒤에 오는 쾌락을 한 세트로 받아들인다.

1970년대, 신경생물학자들은 개를 대상으로 다소 잔인한 실험을 실시했다. 개에게 일부러 전기자극을 가하고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전기자극을 주면 개의 심장박동은 빨라졌다. 신체에 위급한 자극이 주어지면 교감신경이 흥분하여 심박동이 빨라지고 혈액이 뇌와 심장, 근육으로 몰리며 모근이 조여져 털이 곤두서는 현상이 나타난다. 깜짝 놀랐을 때 심장이 쿵쾅거리며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 교감신경이 흥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기에는 자극 시 순식간에 무섭도록 치솟던 심박동 수가 시간이 지나면 약간 빠른 상태로 일정한 리듬을 유지한다. 그러다가 전기자극을 멈추면 갑자기 심장박동은 평상시보다도 훨씬 아래로 뚝 떨어졌다가 다시 서서히 평정을 되찾는 현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즉, 전기자극→심박동 급상승→흥분 상태 유지→전기자극 제거→심박동 급강하→안정시로의 복귀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과정에서 전기자극의 강도를 높이면 심박동의 급상승 정도가 더욱 강하게 나타날 뿐 아니라, 자극 제거 시 나타나는 심박동 급강하, 즉 이완 현상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즉, 강한 자극이 더 큰 고통을 가져오는 경우 그 자극이 제거되었을 때의 안정감 역시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실험이 반복되면서 나타났다. 전기자극을 반복해서 받게 되면 개는 어느새 이에 익숙해졌는지 더 이상 심박동이 빨라지지 않는 순간이 오게 된다. 그런데 심박동의 급상승이 없다고 해서 자극 제거 시 나타나는 이완 현상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고통스러운 자극에 적응하게 되는 것인데, 이를 순화(馴化) 현상이라 한다. 이제 앞서와 같은 수준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전기자극의 강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이를 내성(耐性)이라 하는데, 내성이 생기는 순간 금단 증상도 나타난다. 고통이 클수록 더욱 크게 찾아 오는 이완과 평온함은 일종의 쾌락이 되어 대상을 옭아매는 것이다. 자극의 반복→순화→내성→금단 증상으로 이어지는 ‘중독의 고리’는 꽤나 강력하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보이는 반응은 개가 보이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본다면 인간이 오히려 더 격하게 반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개에 비해 대뇌가 발달한 인간은 신체적 자극뿐 아니라, 정신적인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중독의 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상이 반드시 고통을 수반할 필요도 없고, 그저 ‘자극적’이기만 하면 되며, 실질적 대상이 없어도 상관없다. 즉, 굳이 그 자극 대상이 마약이나 알코올, 니코틴 등의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게임, 쇼핑, 섹스, 권력, 인터넷, 도박 등등 뭐든지 ‘자극’으로서 기능하기만 한다면 중독의 고리는 쉽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개인의 취향을 고려한다면, 중독의 고리를 만들 수 있는 자극 대상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중독의 고리는 한 번 형성되면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독의 고리는 내성에 의해 증폭되는 특징이 있기에 그 끝은 파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현대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얽히게 되면서 중독의 고리를 형성하는 원인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자가 증폭된다는 특징상 중독의 고리는 점점 더 커지고 집단화되는 듯하다. 조금만 눈을 돌려 보자. 막말은 수위를 높여가며 비수보다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고, 단지 쳐다보는 눈빛이 기분 나빴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일 정도로 폭력의 반응 정도는 강해지고 있으며, 겨우 몇 백만원의 돈을 빼앗길까봐 맨 정신에 시신을 몇 백 조각으로 갈가리 찢는 이도 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의 결말은 폐차장 신세이듯, 점점 더 격해지고 집단화되는 중독의 고리 증폭을 내버려 둔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이다.

2012-04-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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