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경영판단과 책임추궁/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경영판단과 책임추궁/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2015-09-29 23:08
업데이트 2015-09-30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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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회사의 경영자는 늘 배임·횡령 등 형·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에 노출돼 있다. 법률상 타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에 대한 엄격한 의무와 책임 구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현재까지 금융기관의 임직원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소송의 규모만 보더라도 무려 9694명, 약 2조 2000억원에 이른다. 또한 회사는 사적 단체임에도 주주·채권자의 고발, 검찰의 기소로 경영자의 횡령·배임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책임 추궁이 따르는 것은 매우 복잡한 기업의 의사결정에는 실패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성공한 투자에 대해서는 아무리 큰 잘못이 있더라도 묵인된다. 그러나 100번의 성공이 한 번의 실패로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수시로 급변하는 기업 환경과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적어도 다른 기업에 앞서는 독창적인 기획과 과감한 실행이 필수 불가결하지만 실패의 위험이 수반된다. 경영자가 소극적인 대책만을 강구한다면 경영의 활력을 잃게 되고 회사의 존립마저도 위태로울 수 있다. 따라서 경영자는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위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신속히 단행할 수밖에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실패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경영자(이사)의 의사 결정에 따른 책임은 민사책임이건 형사책임이건 법원이 최종적인 판단을 한다. 그러나 경영자의 판단 자료는 그 당시에 입수한 것에 국한되고,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만약 법원이 사후적인 자료를 근거로 하여 결과만을 보고 경영자가 내린 경영 판단을 심사한다면 경영자의 결정과 법원의 판결은 다르거나 모순될 수밖에 없다. 경영 판단은 실제 결과를 알 수 없는 사전적인 결정인 데 반해 이에 대한 사법심사는 결과를 보고 판단하는 사후적 심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사가 내린 경영 판단이 당시에 타당했는지를 법원이 사후적으로 판정하는 것은 법원에 마치 경영에 대한 감독기관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과 다름없고, 이는 자본주의의 원리와 맞지 않는다.

그래서 각국은 입법 또는 판례에 의해 이사의 손해배상 책임 추궁 소송에서 경영 판단의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경영 판단의 원칙은 “이사가 권한 내에서 한 결정에 합리적인 근거가 있고, 회사에 이익이 된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으로 내린 것이라면 법원은 이사의 행위를 금지·취소하거나 또는 이사에게 배상 책임을 과하려고 내부적 경영에 간섭하거나 이사의 판단에 갈음해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영 판단의 원칙은 사법심사를 자제하는 사법소극주의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경영 판단의 원칙이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과 관련해 인정돼 온 것임에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계를 중심으로 이사들의 경영 판단은 존중돼야 하며, 이를 무시하고 형사상 배임죄를 추궁하는 것은 사법권의 남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며칠 전 내려진 이석채 전 KT 회장의 1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그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경영 판단이 존중돼 이사가 책임을 면하려면 몇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이사들의 행위가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배돼서는 안 된다. 둘째, 자신 또는 제3자의 이익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만을 위해 내려진 결정이어야 한다. 셋째, 결정이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며 무모한 독단적 결정이 돼서는 안 된다. 따라서 경영 판단 자체만으로는 이사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다. 그동안 법원이 이사들이 경영 판단의 원칙을 주장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사들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위의 전제 조건을 충족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식회사의 경영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우선돼야 한다. 이를 최소한으로 담보하기 위해 상법은 이사의 선량한 관리자 주의 의무와 충실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경영은 오너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경영되고 있어 이사의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가 태반인 것이다.

회사와 주주를 위한 경영도 하지 않고, 경영권의 자율성과 경영 판단만을 강조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오너나 지배주주가 아니라 회사와 주주 중심의 경영이 돼야 한다. 하루빨리 경영 풍토가 개선돼 경영자의 판단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2015-09-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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