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경제개발과 주인의식/조환복 영남대 새마을대학원 초빙교수

[열린세상] 경제개발과 주인의식/조환복 영남대 새마을대학원 초빙교수

입력 2016-10-14 17:48
수정 2016-10-1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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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복 영남대 새마을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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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발도상국 정부 인사가 서울 시내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출퇴근과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이 이동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건물 내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거리에 사람이 없다고 설명하자 수긍했다. 최근에 아프리카 몇 나라를 방문하면서 대낮에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와 있는 모습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일부는 생업이나 업무상 나와 있었겠지만 상당수 사람은 지나가는 행인이나 차량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며 할 일 없이 배회했다.

구한말 영국인 여행가 비숍은 저서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그 혼잡한 군중 속에서 남성들만이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며 배회하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또한 그녀는 조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하면서도 길거리 조선인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며 그들은 언제나 사색을 즐기는 ‘타고난 철학자들’ 같으며 “가만히 서 있는 대신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듯 보인다”고 비웃듯이 서술했다. 이렇게 목적 없이 떠도는 군중은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 본격적인 근대화 과정이 시작될 때까지 목도된 빈곤의 단면이다.

빈곤은 뿌리가 깊고 해결이 어렵다. 왜냐하면 빈곤은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그 나라가 당면한 총체적인 문제의 복합적인 산물이기 때문이다. 개도국의 빈곤을 질병으로 본다면 지난 수십 년 국제사회의 온갖 처방에도 완치는커녕 내성만 더욱 강해진 만성 질병이다. 이제 빈곤은 세대를 이어 가며 또 다른 빈곤의 원인이자 결과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노력도 2000년대 들어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로 이어 가고 있으나 현실성이 있느냐는 논란과 함께 다분히 희망 사항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최근 국제개발 협력 체제는 공여국 중심에서 수원국 정부와 국민이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개발 원조가 성공하려면 대상 사업의 선정, 계획, 이행, 평가 등 전 과정에서 수원국 정부와 국민의 주체적인 참여가 긴요하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한국의 개발 경험은 대외 원조를 활용하면서도 주인의식을 지속적으로 배양했다는 점에서 새롭게 평가된다. 그러나 그간 국제사회의 접근 방식은 대부분 기능적인 역량 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우리의 소중한 개발 경험인 정신계몽의 중요성은 간과되고 있다.

세계의 주류 개발경제학자들 역시 경제 논리가 아닌 주민의 정신변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 등 여러 나라의 농촌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21세기 새로운 농촌개발 패러다임’을 발표했다. 한국의 우수한 농촌개발 경험으로 새마을운동을 부각하면서도 새마을정신과 같은 진취적인 사고방식의 필요성은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1970년대 한국의 경제발전이나 국가 근대화는 정신적 측면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빈곤의 덫에 빠져 체념하고 무기력한 환자를 구하려면 훌륭한 의학적 처방 못지않게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를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정신적 각성은 외부에서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빈곤이라는 내 질병은 내 책임이며 내가 고쳐야 한다는 의식 없이 고질병이 낫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중국의 신농촌운동이 엄청난 재정 투입에도 아직 농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것도 결국은 주민이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의식의 전환을 이루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주는 대신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기 전에 왜 잡아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해야 한다. 기능적인 방법을 전수하기 이전에 정신 자세 변화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수혜 주민의 주인의식이 없으면 원조사업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우며 사업 역시 지속이 가능하기 어렵다. 한국의 개발 경험에서 발전 지향적인 정신 가치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수혜국 정부와 주민들이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 의식전환 사업이 한국형 원조의 불가결한 일부분이 돼야 한다.
2016-10-1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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