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주제 ‘성매매’ 확 와닿지 않지만… 비노슈 연기는 ‘명불허전’

프랑스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 주연의 영화 ‘엘르’(11일 개봉)는 여성들의 욕망과 책임에 대해 사실적이면서 적나라하게 접근한 영화다. 파리를 배경으로 학업을 위해 성매매에 빠져든 여대생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사회 고발적이거나 훈계조의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다.

감독과 작가, 세 명의 주연 배우가 모두 여성인 이 작품은 오히려 문제를 여성의 시각과 관점에서 다룬다.

영화는 두 가지 시선으로 인물들을 따라간다. 프랑스 엘르 매거진의 유명 에디터인 안느(쥘리에트 비노슈)는 클래식으로 아침을 열고 일에 있어서는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집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중산층 주부다. 그녀는 기사 마감에 시달리면서도 남편 상사 가족과의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일상에 지쳐 있다.

그러던 중 안느는 대학생 성매매 관련 기획 기사를 준비하면서 만난 두 명의 젊은 여성을 통해 적잖은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된다. 기자와 취재원의 인터뷰 형식으로 들어간 장면은 그녀들의 삶의 궤적을 뒤쫓으며 현재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여대생은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지녔지만 모두 당당하게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다.

겉보기엔 평범한 대학생인 샤를로트(아나이스 드무스티어)는 학비를 벌기 위해 보모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학업에 영향을 받게 되자 성매매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거침없는 말 솜씨와 관능적인 매력을 지닌 알리샤(요안나 쿨리크)도 성매매를 하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다. 파리에 유학 온 첫날 가방을 잃어버린 뒤 장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외면받고 방값 운운하며 가슴을 보여 달라는 집주인의 어이없는 요구에 상처받은 알리샤는 생활고 때문에 결국 그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한편 처음에는 이들의 행동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던 안느는 남들과는 다른 비밀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두 여대생의 이야기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 그녀는 충격적인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일탈과 욕망을 마주하고 혼란을 겪게 된다.

그렇다고 영화가 이 두 여성의 생활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이들이 그런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에 집중한다. 특히 자신들의 아버지 나이쯤 되는 남성들에게 변태적인 요구를 받고 괴로워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이것이 사회적 문제임을 에둘러 표현한다. 연출을 맡은 마우고자타 슈모프스카 감독은 “이 영화는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려는 영화가 아니며 주인공들의 책임과 욕망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이고 담담한 연출 기법이 돋보인다. 성매매라는 민감한 주제를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주제 의식이 보편적으로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위선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중년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쥘리에트 비노슈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인기기사
인기 클릭
Weekly Best
베스트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