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이와 작별 인사를 나눈 야구장 신에서 나정이에게 했던 ‘거기까지만’ 이 한마디에 많은 의미가 담겼던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더이상 가까이 할 수 없는…. 웃으면서 떠나보내야 했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 NG를 많이 냈어요.” 나정이를 보낸 뒤 홀로 더그아웃에 앉아 미소가 범벅된 눈물을 흘린 장면도 떠올렸다. “나정이가 햄버거를 싸들고 야구장에 찾아왔던 일, 관중석에서 나정이가 웃어 준 일, 야구공을 나정이에게 던져 줬던 일…. 하나씩 머릿속을 스쳐 갔어요. 짝사랑이 끝나서가 아니라 행복했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게 슬펐죠.”
‘응사’가 방영되는 내내 인터넷에서는 그의 과거 작품들이 회자됐다. 2003년 ‘올드보이’에서 우진(유지태)의 아역으로 데뷔했던 것부터 ‘혜화, 동’(2011)의 나약한 소년, ‘건축학개론’(2012)과 ‘늑대소년’(2012)의 악역까지 새삼 화제가 됐다. 부드러움과 서늘함이 공존하는 얼굴에는 어떤 색을 입혀도 고스란히 스며들었고, 순박한 경상도 총각(영화 ‘전국노래자랑’)에서 연쇄살인마(영화 ‘무서운 이야기’)까지 ‘유연석’을 지우고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일찌감치 충무로의 기대주로 꼽혔던 그였지만 스타덤에 오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드라마 ‘구가의 서’(2013)로 인지도를 높이기 직전에는 시트콤이 27회 만에 조기 종영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칠봉이가 ‘1만 시간’의 연습과 노력으로 야구 천재가 됐듯 유연석도 1만 시간, 꼭 10년 동안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를 찾아주는 감독님”과 “좋은 작품이 끊이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활동했다. 또 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 대학원(세종대 연기예술학 MFA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밤샘 촬영을 마치고 1교시 수업에 들어가는 열의 끝에 지난해 3학기까지 마쳤다.
‘응사’를 통해 “이 배우가 그 배우였어?”라는 놀라움을 이끌어 냈을 때, 독립영화에서 TV 시트콤까지 주·조연을 가리지 않았던 그의 필모그래피가 비로소 빛나던 순간이었다. “제가 ‘응사’로 데뷔한 신인이었다면 지금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거예요. 꾸준히 해 왔던 캐릭터들이 층층이 쌓여 제가 사랑받는 데 보탬이 된 것 같습니다.”
새로운 캐릭터를 끊임없이 만난다는 게 배우로서 가장 큰 행복이라는 그다. ‘응사’가 끝나기도 전에 영화 ‘은밀한 유혹’과 ‘상의원’에 주연으로 캐스팅돼 쉴 틈도 없이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맞아 석사 논문도 준비할 거란다. 1만 시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대중에게 ‘응답’받은 그는 서른한 살이 된 올해 또 새로운 1만 시간의 계획표를 만드느라 누구보다 마음이 바쁘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