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시장에 다양성·활기 불어넣어…이선희·이승환·이소라 상위권 차트에 올라

가요계에 중견 가수들이 봇물 터지듯 귀환하는 가운데 음반 시장에도 변화의 기미가 감지된다. 아이돌 그룹이 점령한 음반차트에 중견 가수들이 속속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침체된 음반 시장에 활기와 다양성을 더함과 동시에 디지털 음원 시대에 잊어진 음반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미미하지만 의미 있는 흐름이다.

때로는 CD를 사서 찬찬히 들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음악들이 있다. 아이돌밖에 남지 않은 음반 차트에 중견 가수들이 하나둘 이름을 올리는 이유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은미, 이선희, 임창정, 조성모, 이승환의 앨범 표지.


이소라


이선희의 정규 15집 ‘세렌디피티’는 지난 25일 발매와 동시에 한터차트 일간 1위에 올랐으며 30일 기준으로 핫트랙스, 한터차트, 신나라레코드 등 10위권 내를 유지하고 있다. 이승환의 정규 11집 ‘폴 투 플라이’는 발매하기도 전인 26일 선주문량만으로 핫트랙스 1위를 차지하는 등 각종 음반차트에서 3위권 내를 유지하고 있다. 이소라의 정규 8집 ‘8’은 내달 8일 발매를 앞두고 선주문량으로 핫트랙스 10위권에 진입했고 베테랑 발라드 가수인 임창정과 조성모의 새 앨범도 선전하고 있다. 최근 한 달 동안 이들 음반차트의 10위권이 밴드 넬과 루나플라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이돌 일색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이들은 대부분이 디지털 싱글과 미니 앨범 위주의 가요계에서 정규 앨범을 들고 나와 무게감을 더한다. 이선희의 앨범에는 총 11곡, 이소라의 앨범에는 8곡이 실렸으며 이승환의 앨범은 더블 CD를 염두에 둔 ‘전편’의 이름으로 발매됐다. 이들은 꽉 채운 음반이 하나의 작품임을 강조한다. 이승환은 “한두 곡만으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싱어송라이터로서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며 “앨범 전체에 내 삶을 녹여 내는 재미 때문에 정규 앨범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음원으로는 느낄 수 없는 사운드를 위해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이승환은 3년에 걸쳐 미국 LA와 내슈빌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했고 한 곡당 믹싱을 2~3번, 마스터링을 6번씩 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한 돈은 3억 8000만원에 달한다. 이소라의 새 앨범은 녹음 및 후반 작업 기간만 총 3년, 보컬 및 악기 녹음만 100여회에 이른다. 프랜 캐스컬트와 크리스 케링거 등 세계적인 프로듀서들이 믹싱과 마스터링을 맡아 한 곡당 두세 차례 믹싱과 마스터링을 거칠 정도로 공을 들였다. 지난 26일 EP앨범 ‘스페로 스페레토’를 발표한 이은미는 녹음 과정에서 아날로그 사운드를 구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는 “악기들의 전체적인 균형이 좋지 않은 녹음은 폐기하다 보니 한 곡당 30여 테이크(중단하지 않고 한 번에 찍거나 녹음하는 것)에 걸쳐 노래한 곡도 있었다”면서 “좋은 해상도의 스피커로 들어야 디지털 음원에는 없는 사각거림과 공간감이 느껴질 것”이라고 자부했다.

1990년대 가요계는 김건모와 서태지, 신승훈, 조성모 등 밀리언셀러 음반이 쏟아진 음반 시장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2000년대 불법 MP3 파일이 등장하면서 음반 시장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2004년 세븐의 디지털 싱글 ‘크레이지’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디지털 음원 시대가 열렸다. 음반 시장의 고객 대부분이 아이돌 그룹의 팬들인 탓에 음반 판매량은 아이돌 그룹 팬덤 규모의 척도가 됐다. 정규 음반을 내놓아도 그 안의 수록곡 대부분이 사장되기 일쑤고, 가수들은 앨범 전체에 공을 들이기보다 쉽게 귀에 감기는 히트 싱글을 내는 데 매달리게 됐다.

가요계에 돌아온 중견 가수들은 디지털 싱글의 홍수 속에 ‘소장 가치 있는 음반’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이은미는 이번 앨범의 음원을 발매하기 하루 전에 음반을 먼저 오프라인 매장에 풀었다. 그는 “음악이 소장되지 못하고 소비되는 건 음악가들에게는 불행”이라면서 “LP에서 테이프와 CD, 디지털 음원까지 모든 매개체를 거쳤지만 음반으로 소장되는 음악에는 여전히 진정성과 포근함이 있다”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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