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문제 아닌 ‘인권’의 문제
“고통을 ‘전시’하는 영화 아닌 ‘치유’하는 영화입니다.”

2월 24일, 14년 만에 영화 <귀향>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이 영화는 29일까지 닷새 만에 관객 수 128만3695명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삼일절까지 만이라도 극장에 걸려 있길 기도했는데... 영화가 만들어진 것도 기적이고, 이렇게 많은 관객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기적입니다. 감격스럽습니다.”

투자자도, 배급사도 없었던 ‘버려진’ 영화는 7만5270명 시민 후원자의 힘으로 살아났다. 조 감독은 14년에 걸친 제작과정을 ‘구걸의 역사’라고 표현했다. 투자를 받기 위해 이곳저곳에 손을 내밀었지만 “술은 100만원어치 사줘도, 만원도 후원 안 한다”는 지인부터 “할 일 없냐”며 화를 내는 국회의원까지 있었다.

감독과 배우, 스태프 모두가 목숨을 걸고 매달렸다. 이 영화에서 일본군을 연기한 김구 선생의 외종손 임성철 PD는 희귀질환인 쿠싱병 진단을 받고 뇌하수체 종양 제거 수술을 받기도 했다.

14년이란 시간동안 <귀향>을 만든 원동력은 사명감이었다. 1991년 8월14일 故 김학순씨의 첫 증언 이후 25년, 광복으로부터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할머니들의 가슴 속 상처는 아물지 않는 흉터로 남아 있다. 2002년 ‘나눔의 집’ 봉사활동 중에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감독은 “영화로나마 이 분들을 고향으로 모시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귀향>을 보고는 싶지만, 너무 잔인하고 끔찍할까 예매만 해두고 관람은 하지 않는 관객도 많다. 감독 또한 수위조절에 고민이 많았다. 15세 관람가로 만든 이유는 분명했다.

“증언집의 100분의 1도 안 됩니다. 할머니들이 겪은 실상을 그대로 영화화하면 아무도 못 볼 겁니다. 너무너무 끔찍한 역사입니다. 당시 끌려갔던 할머니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 볼 수 있어야 하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들도 보실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러면서도 고통은 전달이 되어서 이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반성의 계기가 될 수 있어야 했어요.”

실제로 영화의 수위는 15세 관람에 맞춰져 있지만, 역사의 고통을 전하는 데 소홀하지 않게 전개된다. 영화 속 ‘진도 씻김 굿’도 종교를 떠나 할머니들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나온 방법이다. 피해 할머니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독에게 “고맙다.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들은 얼마나 한이 많겠냐”며 펑펑 울었다.

“14년이란 시간이 길지 않았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정작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고통 받은 세월은 70년이 넘어요. 아직도 ‘정신 나갔냐’ ‘증거를 대라’는 메시지가 옵니다. 잔뜩 긴장했던 습관이 남아있어 마냥 기쁘지 않아요. 저는 영화감독이라기보다 봉사자들 중 하나입니다. 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나눔의 집’ 봉사자라는 말이 제겐 가장 큰 자랑이고 수식어입니다.”

<귀향>에는 아픔과 고통이 기록되어 있지만, 거기에 방점이 있는 게 아닌 슬프지만 아름다운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고통을 ‘전시’하는 영화가 아닌 ‘치유’하는 영화이니 많이 봐줬으면, 할머니들의 아픔을 공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감독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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