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진, 제작 일정에 쫓겨 ‘깜깜’…”주중 학습권 침해 우려도”

“그게 무슨 법이에요? 설명 좀 해주세요.”

아역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는 한 지상파TV 드라마 PD는 지난달 29일부터 새롭게 시행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대해 5일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역 배우들의 촬영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코멘트를 거부했다.

사진=알루어(Allure) 제공<br>※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의 골자 중 하나는 연예 활동을 하는 청소년의 권리를 보호하는 내용이다. 15세 미만은 밤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원칙적으로 연예 활동을 할 수 없다. 주당 촬영 시간도 35시간으로 제한된다.

숨 가쁜 일정 탓에 가장 환경이 열악한 드라마 제작현장이 법의 제약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이날로 시행 일주일을 맞은 가운데 아직 초반인 만큼 현장에서 이로 인한 큰 혼란이나 잡음은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많은 일선 PD들은 빠듯한 제작 일정 탓에 법 시행 사실을 아예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다. 대상인 아역 배우들은 촬영 일정에 쫓길 뿐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벌칙조항이 없는 탓에 이 법은 태생부터 한계를 지니고 있어 현장에서 얼마나 지켜질지 의문이다.

배우 김새론(14)이 주인공을 맡은 KBS 청소년 드라마 ‘하이스쿨 러브온’의 성준해 PD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법이 시행된) 지난달 29일 이후 촬영이 이틀밖에 없었던 데다 다른 출연자들의 일정도 있고 해서 밤샘 촬영은 없었다”고 밝혔다.

성 PD는 “법에서 규정한 시간 이전에 끝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촬영시 중요한 스케줄 요소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제작현장이라는 것이 한 연기자 일정이 틀어지면 연쇄적으로 틀어지는 상황이라 여러 문제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MBC 새 주말극 ‘마마’에서 송윤아 아들로 출연 중인 배우 윤찬영(13)의 소속사인 판타지오 관계자는 “이달 초부터 촬영했는데 낮에 주로 찍었고 최근 밤샘 촬영은 없었다”면서 “드라마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기획 단계를 포함해 제작에 장시간 소요되는 만큼 정부가 법을 본격 시행하기에 앞서 충분한 예비기간을 뒀어야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현재 방영되는 드라마를 연출 중인 한 지상파 방송사의 PD는 “드라마 기획 단계에서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미리 반영했을 것인데 이미 방송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법안을 지켜야 한다니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자연스레 아역 배우들이 특히 성인극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 4일 여의도에서 열린 KBS 어린이 드라마 ‘마법천자문’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기훈석 PD는 “촬영 규제 탓에 성인 배우보다 아역 배우를 쓰면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다른 매체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없애거나 아역배우를 빼는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고 밝혔다.

법이 자칫하면 오히려 청소년 배우들의 주중 학습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작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밤 촬영을 피해 낮시간 촬영이 늘어나면 학교 수업을 빼먹고 나와야 하는 일도 생길 것이라는 설명이다. 법은 15세 미만은 35시간, 15세 이상은 40시간 식으로 주당 활동 시간을 제한하지만, 그마저도 현장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산출될 가능성이 크다.

판타지오 관계자는 “아직 아역 배우들이 촬영을 몇 시간씩 하는지 세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각 방송사에서는 일선 PD들에게 법 시행 사실을 알리고 있지만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문보현 KBS 신임 드라마국장은 “PD들에게 법 내용을 공지하고, 법을 지키도록 노력하면서 어려울 경우에는 관련 내용을 공유하자고 했다”면서 “과연 하나도 예외 없이 가능할지는 실태를 파악해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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