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탁 좀 할게요. (이별을 슬퍼하는 것은) 제 장례식 몫으로도 좀 남겨둬야 하지 않겠나요?”

무려 한 세대에 걸쳐 심야의 미국 안방극장을 웃겨온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먼(68)이 20일(현지시간) 담백한 웃음과 함께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레터먼은 이날 미국 뉴욕의 에드 설리번 극장에서 녹화된 CBS ‘레이트 쇼’를 마지막으로 토크쇼에서 은퇴했다.

고향인 인디애나폴리스의 한 방송국에서 일기예보를 담당하던 그는 1982년 NBC로 옮긴뒤 ‘레이트 나이트’를 진행하다가 1993년 CBS ‘레이트 쇼’로 이적해 이날까지 총 6천28회째 토크쇼를 진행했다.

레터먼은 기립박수와 함께 올라선 마지막 무대에서 애써 감정을 감췄다.

눈물보다는 웃음으로 팬들과 작별하겠다고 언론을 통해 이미 계획을 밝힌 터였다.

두고두고 풍자의 대상이 돼왔던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 빌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은 영상편지를 통해 “우리의 오랜 악몽도 마침내 끝나는구나”라고 차례로 말했다.

마지막에 나온 버락 오바마 현직 대통령이 “레터먼이 은퇴합니다”라고 상황을 정리했다.

유명인사 10명이 차례로 나와 레터먼에게 그간 꼭 해주고 싶던 말을 익살맞고 무시하는 어조로 전달하는 행사도 열렸다. 여배우 티나 페이는 “남자들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결국 증명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배우 빌 머레이는 “ 데이브, 당신한테 절대 빚진 것 없어”라는 말을 남겼다.

록밴드 ‘푸 파이터스’는 2000년 초대됐을 때와 똑같은 곡 ‘에버롱(everlong)’을 연주했다. 당시 레터맨은 심장 수술을 받고 복귀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한다”고 이들의 공연을 소개했다.

마지막 쇼가 말미로 접어들면서 레터먼은 팬, 스태프, 가족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분위기가 숙연해질 무렵 그는 “부탁 좀 할게요”라며 “내 장례식 몫도 좀 남겨둬야 하지 않겠느냐”고 다시 특유의 위트로 팬들을 위로했다.

마지막 쇼의 마지막 말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담백했다.

”이제 제 마지막 토크쇼에서 할 말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네요” 라면서, 늘 하던 대로 “고맙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Thank you and goodnight)”로 쇼를 마무리했다.

레이트쇼는 미국 최고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수여되는 에미상 후보에 73차례나 올라 9차례 수상 영예를 안았다.

낙천적이고 차분한 목소리로 촌철살인의 풍자와 풍성한 유머를 구사한 레터먼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독차지했다.

레이트쇼에 출연한 게스트는 전·현직 대통령부터 폴 매카트니, 밥 딜런, 비욘세, 메릴 스트리프, 톰 크루즈, 줄리아 로버츠 등 매우 다채로웠다.

정치 풍자로 유명한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가 레터먼의 바통을 이어받아 레이트쇼를 이끌 예정이다.

레터먼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콜베어의 쇼가 매우 기대된다”며 “프로그램을 훌륭하게 끌고 갈 것으로 믿고 그냥 최고의 성공을 거두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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