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다큐멘터리에 도전한 소감은.
-이틀 찍고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안 찍겠다고 했다가 사흘이 지나자 극 영화를 포기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시나리오 없이 지켜보다가 느낌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다큐멘터리는 정말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다. 극 영화는 어차피 다 가짜이고 소극적으로 되는 면이 있는 반면 다큐멘터리는 직접 진실과 마주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작업이 좋았다. 거창하게 말하면 이 시대와 좀 가까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경계인의 삶을 주목해 왔기 때문에 주제인 이방인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영화 ‘풍경’의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
-처음 그 주제를 받고 내가 그렇게 이방인처럼 생겼나 하고 반문했다(웃음). 1995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길거리에 외국인 관광객밖에 없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서울의 한 풍경이 됐다. 내가 영화에 담아낸 풍경은 실제 관객들도 다 본 풍경이다. 그런데 그것을 자세히 혹은 소중하게 본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마음속까지는 못 들어가지만 서로 스쳐 가지 말고 그 풍경을 함께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풍경은 평등하고 잘난 척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카메라는 묵묵히 서울의 구로동, 가리봉동, 대림동, 마장동 등지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을 담는다. 그와 대조적인 서울 도심의 화려한 모습이 눈길을 끄는데.
-주로 노동 강도가 센 현장을 찾았지만 꼭 그들의 고단하고 피곤한 일상을 담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지만 자신들의 힘들고 피곤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들이 퇴근 후 쓸쓸히 혼자 식사를 하는 모습을 흥청망청하는 서울의 다른 장면들과 대조적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 그들도 이 도시에 살고 있지만 일터가 아닌 곳에서는 철저히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일단 카메라를 들이대면 경계부터 했지만 인사하면서 ‘한국에 와서 꾼 꿈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을 하나만 들려 달라’고 청하면 대부분 호의적으로 변했다. 사람들이 타향에 가면 꿈도 고향에서 꾸는 것과 다르다. 꿈 속의 모든 풍경은 그 사람의 삶과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다큐를 찍으면서 질문하는 사람이 강자가 되기는 싫었고 그들의 감정을 다치지 않고 삶에 대해 묻고 싶었다. 꿈은 대체로 삶 속의 불안함을 나타낸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 꿈에서라도 가족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중국 옌볜에서 태어난 교포 출신으로 ‘망종’, ‘경계’, ‘두만강’ 등의 작품에서 조선족, 탈북자 등 등 소외 계층의 이야기를 담아 왔는데 개인적인 경험과 얼마나 연관이 있나.
-내가 그런 출신이지 않나. 나도 내가 여기 사람인가 저기 사람인가, 어디도 아닌가 고민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가장 좋겠는데 술 한잔 하고 나면 꼭 “한국과 중국이 축구 경기 할 때 어느 편을 응원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 퍼뜩 경계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에는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그런 나의 정서와 맞는 것을 담는 편이다. 어떤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외에서는 영화 속 소외계층에 주목하기보다 카메라 움직임이나 작품 자체에 더 관심을 갖는다.
→지금까지 전체적으로 작품이 무겁고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찍고 싶나.
-현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영화 제작을 가르치고 있는데 ‘풍경’은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함께 만든 영화다. 앞으로 2년간 강의도 하면서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계획인데, 이제는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올 여름방학에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할 생각이다. ‘경주’라는 제목으로 경주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고 주인공에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할 예정이다. 누군가는 장률의 배신이라고 하겠지만 알고 보면 나도 조금 재미있는 사람이다(웃음).
글 사진 전주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