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해피엔딩 아직도 꿈꾸세요?



동화와 현실의 괴리감을 주제로 한 영화는 종종 만들어져 왔다. 동화의 클리셰들을 뒤집고 비틀면서 신선한 재미와 현실에 대한 교훈을 주는 작품들 말이다. ‘슈렉’(2001)은 바로 그런 코드를 앞세워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이다. 13일 개봉하는 ‘해피엔딩 네버엔딩’도 넓은 범주에서는 동화의 판타지에 찬물을 끼얹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미 현실의 냉정함을 혹독하게 경험한 어른들에게는 불필요한 이야기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신데렐라 콤플렉스 깨기’라는 테마를 넘어 인간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믿음’ 혹은 ‘신념’의 문제까지 건드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 영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적어도 당신이 ‘운명’이나 ‘천국’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해 본 적이 있다면 말이다.

좋은 집안에 미모까지 겸비한 로라는 파티에서 만난 산드로가 여러 정황상 자신의 꿈에 나타났던 왕자님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자정을 알리는 괘종시계가 울리자 구두 한 짝을 떨어뜨리고 사라진 사람은 산드로이다. 즉 ‘신데렐라’는 가난하고 우유부단하고 말도 더듬는 산드로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남성의 판타지까지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가벼운 역할의 전도(顚倒)로 시작된 이야기는 로라가 마성의 음악비평가 맥심에게 끌리면서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데, 운명적 사랑에 대한 그녀의 믿음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결국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인사불성이 된 그녀가 왕자의 키스가 아닌 바람둥이의 따귀로 깨어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싸늘하고 강렬한 대목이다.

로라와 산드로가 사랑의 실체를 절감하며 성장하는 중이라면, 주변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신변과 관계된 믿음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피에르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면서도 별점 치는 여자가 예언한 죽을 날짜가 다가오자 강박에 사로잡혀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어린 니나는 부모님의 이혼과 관련한 충격을 신앙심으로 극복하려고 노력 중이다. 마리안느는 온갖 점술과 꿈 이야기를 믿는 동시에 정신과 상담도 의지하는데,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믿음, 즉 과학과 학문에 대한 신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처럼 한편에서는 현실의 해피엔딩을 확신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의 촘촘한 에피소드가 개연성 있게 펼쳐진다.

데뷔작 ‘타인의 취향’(2000)으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던 배우 겸 감독 아녜스 자우이는 이번 작품에서도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보여 준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 다수의 등장인물이 실타래처럼 얽힌 관계 속에서 풀어내는 내러티브는 전작들만큼이나 흥미롭고, 그들의 다층적 고민을 하나의 바늘로 꿰는 솜씨라든가 특유의 유머 감각도 여전히 즐겁다. 다만 로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이 짝을 (되)찾게 되는 결말부는 다소 낭만적이라는 인상도 남기는데, 인간에 대한 감독의 무한한 애정이 그 ‘쓴맛’은 희석시킨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것은 믿어도 좋다는 대사의 연장선에서 제시한 결말이니 크게 거슬릴 것은 없다. 영화가 아닌, 인생의 해피엔딩을 마다할 사람은 없지 않은가. 12세 이상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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