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7’ 등 TV 속 복고바람 영향… 중장년층 향수 자극… 다양한 소재도 시대극의 매력

스크린에 복고 바람이 드세다.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영화 ‘국제시장’을 필두로 향수나 낭만을 자극하는 시대극이 줄줄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시장’이 신작들의 공세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며 중장년 관객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시장’의 바통을 이을 작품에 관심이 쏠려 있다.







지금까지의 시대극이 전쟁의 상흔이나 가족의 비극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에는 당시의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세대의 공감을 유도하고 과거에 빗대 현재를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요즘 1970년대는 가장 각광받고 있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억압된 사회 분위기 이면에 문화와 낭만이 꽃피었던 시기이도 하다. 다음달 5일 개봉하는 영화 ‘쎄시봉’은 70년대 청춘문화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무대로 활동했던 한국 포크 음악계의 전설 ‘트윈폴리오’가 주된 소재다. 3040에게 90년대 음악 향수를 자극한 ‘토토가’가 있었다면 ‘하얀 손수건’, ‘웨딩 케이크’ 등을 히트시킨 이들은 7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5060세대의 향수를 정조준한다.

21일 개봉하는 ‘강남 1970’은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지하철 2호선 개통 등 강남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70년대 경제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다소 색깔은 다르지만 곽경택 감독의 신작 ‘극비수사’ 역시 1978~79년 유괴범에게 두 차례 납치된 한 초등학생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는 당시 상황을 배경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한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강남 1970’을 연출한 유하 감독은 “본격적인 자본주의가 시작된 1970년대는 뭐든지 이룰 수 있다는 욕망이 꿈틀되는 시대이자 억압된 시대 상황 속에서 문화적으로는 낭만이 꽃피는 시대가 교차해 영화화하기에 좋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선 시점을 선택한 시대극들도 많다. 영화 ‘허삼관’은 중국 위화 감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1960년대 충남 공주를 영화적 배경으로 선택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자식을 위해 피를 팔아야 했던 눈물 나는 부성애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부각된다.

올 하반기에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도 대거 선보인다. 설경구, 여진구 주연의 ‘서부전선’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3년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으로 남한과 북한군 병사가 전선을 사이에 두고 우연히 만나 우정을 나눈다는 이야기다. 연기파 배우 류승룡, 이성민이 주연한 영화 ‘손님’(가제) 역시 1950년대를 배경으로 외딴 산골의 고립된 마을로 우연히 찾아온 낯선 남자와 그의 아들,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사건을 그린다. 하반기 개봉 예정인 휴먼 드라마 ‘오빠 생각’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실존했던 어린이 합창단을 모티브로 삼았다.

보통 영화 제작 기간이 2~3년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스크린의 복고 열풍은 대중문화 전반의 흐름과 깊은 관련이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영화투자팀의 한 관계자는 “영화는 유행에 민감한 TV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2012년부터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등 복고풍 소재가 대중문화계를 강타하면서 중장년층까지 관람 연령대를 확장할 수 있는 1970년대 복고 영화가 많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소재 고갈을 극복한다는 측면에서도 시대극의 장점은 있다. 영화홍보사 퍼스트룩의 강효미 이사는 “그동안 시대극은 일제시대, 한국전쟁에 국한됐기 때문에 여전히 끄집어낼 이야기가 많은 편이다. 특히 ‘변호인’ 등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정치적인 이야기에도 유연해지면서 관객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소재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시대극이 제작비가 많이 드는 것을 감안할 때 3년 연속 1억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에 투자금이 몰리면서 빚어진 현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강남 1970’이나 ‘허삼관’은 모두 총제작비가 100억원이 들어간 대작이다. 영화계 관계자는 “최근 4대강 개발이나 아파트 난개발 때문에 시대극 찍기가 어려워졌다”면서 “이 때문에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해야 되는 부분이 늘어나 현대극에 비해 20~30%가량 제작비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향수팔이라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좋았던 시절을 돌아보려는 중장년층 관객의 소구가 커짐에 따라 앞으로도 복고 소재는 세력을 이어 갈 전망이다. 쇼박스의 이현정 마케팅팀장은 “무한경쟁 시대에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 관객들은 복고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현실의 답답함을 해소하려는 것”이라면서 “특히 최근 극장가에 경제력이 있는 40~60세대가 주 관객층으로 떠올라 앞으로 이들의 향수를 겨냥한 작품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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