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탄생과 바꾼 엄마… 그 결핍이 낳은 관계

“내 이름은 엠마누엘, 난 17살이고 엄마를 죽였다.” ‘트루스 어바웃 엠마누엘’은 한 십대 소녀의 다소 자극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엄밀히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지만, 자신을 낳다가 죽은 친엄마를 ‘죽였다’고 비장하게 말한다. 매년 생일파티와 추모식을 한날에 치르면서 생일을 ‘엄마를 죽인 날’로 매도하는 그녀의 죄의식은 처음부터 사춘기 소녀가 흔히 경험하는 정서적 방황보다 훨씬 진지하게 전달된다. 여기에는 상실과 결핍의 감정을 절절히 겪어 온 여성 감독의 꼼꼼한 연출이 뒷받침 되어 있다.

배우였던 어머니(바버라 바흐)와 뮤지션이었던 의붓아버지(링고 스타) 밑에서 자란 프란체스카 그레고리니 감독은 남다른 감수성으로 미장센과 음악은 물론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까지 적절히 조율하며 이 독특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특히 극 중 인물들이 표출하는 고통의 방식, 그 비정상성에 몰입하게 만들며 논리의 틈새를 메워 나가려 노력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첫 내레이션의 날 선 느낌과 달리 영화는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몽환적으로 엠마누엘의 심리에 다가간다. 친엄마에 대한 그녀의 막연한 그리움과 결핍은 ‘관계’에 대한 혼란으로 외면화되는데,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운운하며 새엄마와 아빠를 괴롭히는 한편 직장 상사에게는 한없이 까칠하게 굴고, 전철 안에서 만난 남자아이(클로드)에게는 저돌적으로 접근하는 식이다.

어느 날 엠마누엘은 옆집에 이사 온 여인(린다)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에 묘하게 이끌린다. 어딘지 사진 속 엄마의 모습과 닮은 듯한 린다의 베이비시터를 자처하면서 엠마누엘은 그녀와 유사 모녀의 관계를 향해 나아간다. 린다와 가까워질수록 엠마누엘의 삶은 활기를 띠고 모든 것이 안정되어 가는 듯하다. 그러나 엠마누엘은 곧 남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린다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 비밀을 지켜 주기 위해 애쓰다가 오히려 궁지에 몰린다. 제3자가 린다의 비밀을 들춰내는 상황, 상반된 과거로부터 유사한 고통을 갖게 된 두 여자의 정신세계가 전복되는 순간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터질 듯한 긴장감과 아이러니 속에서 영화는 초현실적인 세계로 진입한다. 그렇게 린다와 아기의 은밀한 공간과 엠마누엘이 종종 겪는 물 속의 환영이 합치되면서 엉켜 있던 이야기의 실타래는 비로소 조금씩 풀려 나간다.

여기서 고개를 들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의문. 비밀을 가진 것은 린다인데, 왜 영화의 제목은 엠마누엘에게 무엇인가 숨겨진 진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 단서는 엠마누엘이 린다의 상처를 치유하며 자신의 문제까지 해결하는 결말부에 있다.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 낸 ‘왜곡된 세계’는 린다뿐 아니라 엠마누엘도 가지고 있었던 비밀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통한 회복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신선한 감각과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17일 개봉. 15세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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