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들, 영화제 보이콧 선언

영화 ‘다이빙벨’ 상영으로 촉발된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회·영화인과 부산시 간 갈등이 영화제 자문위원 위촉과 정관 개정 논란으로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영화인들은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가 확보되지 않는 한 행사 참가를 거부할 것이라고 밝혀, 올해 21회를 맞는 부산영화제의 파행 운영이 우려된다.

◇ 자문위원·정관개정 논란의 요지는

부산시와 영화인들이 현재 대립하는 부분은 자문위원 위촉과 정관 개정 관련 문제다.

2014년 부산시의 ‘다이빙벨’ 상영 취소 요구와 영화제의 상영 강행에서 시작된 양측의 갈등은 부산시의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요구에 이은 검찰 고발 등으로 비화되다가 서병수 부산시장이 당연직인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고 민간 위원장을 영입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달 12일 이용관 당시 집행위원장이 전문위원 68명을 위촉하고 부산시가 이를 문제 삼으면서 갈등이 재점화됐다.

서 시장의 사임으로 부산시장을 당연직 조직위원장으로 규정한 정관을 개정하는 문제가 불거짐에 따라 집행위 측은 별도의 이사회가 민간 조직위원장 후보를 추천하면 영화제 총회에서 이를 의결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어 임시총회를 열어 이런 방향으로 정관을 개정하고자 자문위원 68명을 위촉했던 것이다.

자문위원은 총회에서 의결권을 가진 회원이다. 총회 재적회원은 임원, 집행위원, 자문위원으로 구성된다.

이번 자문위원 추가 위촉으로 총회 재적회원 중 자문위원의 비중이 기존 44.8%에서 69%로 늘어나 정관 개정 정족수인 3분의 2를 넘어서게 됐다.

이에 부산시는 집행위가 자문위원 증원을 통해 영화제 총회 의결권을 장악, 영화제 정관을 자신의 ‘입맛’대로 고쳐 영화제를 편향적으로 운영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또 조직위원장(부산시장)의 지시를 받지 않은 자문위원 위촉은 절차상 하자가 있고, 집행위원장이 자문위원을 위촉하도록 한 2004년의 정관 개정도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이달 14일 법원에 자문위원 위촉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부산시는 민간 조직위원장 선임 방안과 관련해서는 집행위가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면 시장이 임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화감독, 제작자, 영화종사자 등 영화 관련 단체가 모인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회견에서 “다수의 현장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 자문위원 위촉에 흔쾌히 응한 것은 임시총회의 정관을 통해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원천적으로 확보될 것을 내심 기대했기 때문”이라며 부산시의 대응에 강하게 반발했다.

◇ 영화인들 “부산시는 편가르기 말고 미래 위한 결단해야”

영화인들은 이번 부산영화제 사태가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현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013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7회 런던한국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된 ‘관상’이 돌연 취소되고 ‘숨바꼭질’로 바뀐 것이나 같은 해 스위스에서 열린 한-스위스 수교 50주년 영화제에서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한 ‘지슬’의 상영을 한국대사관 측이 반대한 것 등이 그 사례라는 주장이다.

지난해에는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이 영화진흥위원회가 선정한 한국예술영화를 정해진 회차만큼 상영해야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독립·예술영화 시장의 자율성 훼손 우려가 제기됐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회장은 “일련의 사태를 지켜봤을 때 부산영화제 사태는 치밀한 작전에 의한 계획된 수순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윤철 한국영화감독조합 부대표는 “감독들은 현 사태가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을 경우 총투표를 거쳐 영화제에 참가하지 않을 방침”이라며 “부디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의 마지막 호소를 부산시가 귀담아듣고 부산영화제의 미래를 위한 결단을 내려달라”고 말했다.

부산시가 자문위원 위촉을 두고 “수도권 영화인들을 대거 위촉한 것은 부산영화제를 성원한 부산시민의 사랑을 저버린 행위”라거나 “일부 영화권력자들이 더 이상 부산영화제의 소중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영화인들은 ‘편가르기’ 행태라고 비난했다.

정 부대표는 “영화제는 좌파나 우파, 정치적 이념으로 나뉘어서는 안 되고 그런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며 “영화제를 정치적 상황으로 몰아넣는 부산시의 행태가 모든 사태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방은진 대표는 “부산시민과 서울에 있는 영화인을 가르지 말아달라. 부산영화제는 부산시민, 대한민국, 전 세계인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사견임을 전제로 “부산시가 정상화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때까지 부산거리에서 부산시민과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영화제를 하는 것을 대안으로 고민해봐야 한다”며 별도의 영화제 개최 방안도 언급했다. 최악의 경우 ‘한 지붕 두 영화제’ 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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