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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보다 지진이 더 무서워요”

“체르노빌보다 지진이 더 무서워요”

입력 2011-06-16 00:00
업데이트 2011-06-1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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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대의 핵 참사로 알려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에서 살아난 한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이 크라이스트처치 지진이 훨씬 더 무섭다고 뉴질랜드 언론에 밝혔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크라이스트처치에 이주해 사는 레나타 마르헤프카는 16일 현지 신문에 지난 1986년 4월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자신은 12살이었다면서 가족들이 더 건강한 환경에서 살려고 9년 전 뉴질랜드로 이주했는데 지진이 더 무섭다고 말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참사는 방사능 불꽃이 열흘 동안이나 타면서 190톤의 유해물질이 공기를 오염시킴으로써 그 후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었다.

참사 당시 키예프에 살다 러시아로 이주했고, 다시 뉴질랜드로 이주한 마르헤프카는 자신의 삶은 재난의 연속이라면서 2년 전에는 이혼을 했고, 지진으로 자신이 사는 울스톤 집이 크게 파손되지는 않았으나 큰 지진을 겪으면서 불안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지난 13일 일어날 지진은 최악의 지진 중 하나였다. 2월 지진 때는 크라이스트처치의 다른 지역에 있었고, 차 속에 있었기 때문에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뛰어다니며 지명을 질러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지진은 달랐다. 최악이었다. 카페에 있었는데 다리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밖으로 뛰쳐나왔다. 정말 힘들었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을 데려오려고 학교와 유치원으로 달려갔다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여기저기 물바다 천지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것이 절대 좋은 경험일 수는 없었다”면서 자신에게 있어 체르노빌은 그다지 무서운 경험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체르노빌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실제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것을 보지도 못했고,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지진은 내가 흔들리는 것을 내내 느껴야 했고, 그리고 지난해 지진으로 무엇보다 지난 9개월 동안 벼랑 끝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났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지진 뒤 마르헤프카는 아이들을 데리고 웰링턴으로 가서 한 달 동안 지내다 왔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진동이 없는 데도 그랬다. 그래서 웰링턴으로 가서 친구들과 함께 지내다 왔다”고 말했다.

그는 거기에 갔는데도 여전히 흔들리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며 이제는 무서워서 집을 떠날 수도, 거리를 걸어 다닐 수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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