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카다피 최후의 나날들

’도망자’ 카다피 최후의 나날들

입력 2011-10-23 00:00
업데이트 2011-10-2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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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전전하며 쌀과 파스타로 연명 카다피 마지막 동행한 측근 NYT와 인터뷰

물도, 컴퓨터도, 전기도 없었다. 절대 권력을 누린 독재자는 고향으로 돌아와 버려진 가옥을 전전하며 사람들이 두고 간 쌀과 파스타로 연명했다. 조여드는 포위망을 벗어나려고 했을 때 추적자들은 퇴로를 막고 기다리고 있었다.



무아마르 카다피와 함께 붙잡힌 리비아 인민수비대 사령관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은 22일자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시르테에 포위된 카다피 일행의 마지막 날들을 털어놨다.

다오 사령관은 리비아 정보부대이자 지원병 조직인 리비아 인민수비대를 이끌었던 카다피의 최측근이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카다피는 수도 트리폴리가 과도정부에 함락된 지난 8월 22일 측근과 수행원 약 10명만을 데리고 거점 지역인 타르후나와 바니왈리드를 경유해 곧바로 고향 시르테에 도착했다.

남부 사막지대에 은신했다거나 니제르로 도피했을 것이라는 그간의 추정을 뒤엎은 것이다.

시르테행은 4남 무타심이 외부의 예상을 역이용한 결정이었다.

다오는 카다피가 외부의 예상과 달리 전투에 나서지 않았다면서 그가 총 한 발 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대신 카다피는 외부와 거의 고립된 채 코란을 읽거나 전화 통화로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가 없기도 했지만 있었다 해도 전기가 자주 끊겼다.

카다피는 “왜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거지?”, “왜 물이 없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와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위성전화뿐이었는데, 이를 이용해 지지자들에게 투쟁을 독려하는 육성 메시지를 시리아 방송사로 전달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 주위에서 권력을 이양하라고 설득했지만, 카다피는 “이 곳은 내 조국이다. 나는 1977년에 권력을 리비아 국민에게 모두 넘겼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카다피 본인은 퇴진 가능성도 열어뒀지만 아들 무타심이 특히 더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고 다오는 전했다.

한 번은 포탄이 카다피 일행의 거처에 떨어져 경호원 3명과 요리사가 부상해, 그 때부터 모두 직접 음식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됐다.

2주전 과도정부군의 포위망이 시르테 중심부까지 좁혀오자 카다피 부자는 주거지역인 ‘제2구역’에 있는 주택 2곳을 오가며 공격을 피해다녔다.

궁지에 몰린 카다피는 결국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생가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20일 새벽 3시를 출발시간으로 정했다.

이날 혼란으로 출발이 지연되면서 차량 40대로 구성된 카다피 일행은 오전 8시에야 이동을 시작했고, 카다피와 최고사령관, 친척, 다오가 탄 도요타 랜드크루저는 30분만에 나토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파편을 맞고 정신을 잃은 후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는 다오는 “리비아에서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해 모두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신문에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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