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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특파원 워싱턴 저널] 옆집은 아직 정전인데…美 ‘이웃의 정’ ON? OFF?

[김상연 특파원 워싱턴 저널] 옆집은 아직 정전인데…美 ‘이웃의 정’ ON? OFF?

입력 2012-07-04 00:00
업데이트 2012-07-0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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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릴랜드주 브룩빌로드에 사는 니키 멜러(공무원)는 마음이 편치 않다.

자신은 시원한 에어컨이 돌아가는 거실에 앉아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바깥의 폭염을 잊고 지내지만 바로 뒷집과 옆집은 아직도 전기가 안 들어와 나흘째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집에서 와인 한 잔 즐길 때도 이웃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든다.”고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

지난달 29일 갑자기 불어닥친 살인적인 폭풍으로 워싱턴 일대에서만 2일 현재 25만 가구가 여전히 정전 상태를 면치 못함에 따라 예기치 않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연일 찜통 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같은 동네에서도 어떤 집은 전기가 들어오고 어떤 집은 안 들어오면서 이웃 간 ‘인간성’을 시험하는 국면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배가 난파돼 무인도에 떨어진 사람들 중 음식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묘한 ‘윤리의식’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멜러는 고민 끝에 옆집에 사는 앤드루 모랠이 자신의 인터넷선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멜러의 집에서부터 시작된 긴 선이 뒤뜰을 거쳐 모랠의 집으로 마침내 연결됐다. 에어컨이 안 돌아가는 집에서 땀에 젖어 지내는 모랠이지만 인터넷만이라도 사용할 수 있어 이웃에게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메릴랜드주 조지아스트리트에 사는 네이선 리브스도 어린 세 자녀가 신경 쓰여 잠시 망설이다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웃들에게 “언제든 우리 집에 와서 쉬거나 휴대전화 충전을 해도 좋다.”고 알렸다. 대다수 이웃들이 아직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날 한 이웃이 처음으로 음식을 잔뜩 가져와 리브스의 냉장고에 넣은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

어떤 집 대문에는 ‘우리 집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만 댁의 현관 밖에 있는 전원에 우리 집 냉장고 플러그를 꽂아 사용하겠으니 양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메모지도 붙었다. 주인을 당장 만날 수 없어 급한 대로 일단 사용한 뒤 나중에 양해를 구하는 식이다.

작은 소유권이라도 일일이 따지는 미국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다.

그래도 사생활 침해를 싫어하는 미국인답게 전기가 안 들어오는 가정 대부분은 아직까지 이웃에 폐를 끼치기보다 에어컨이 나오는 차 안에서 잠시 몸을 식히거나 자체 동력 발전기 구매에 나서고 있다. 폭염과 정전은 이번 주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라고 당국은 밝혔다.

carlos@seoul.co.kr

2012-07-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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