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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반대투쟁 17년’ 오키나와 헤노코는 지금...

’미군기지 반대투쟁 17년’ 오키나와 헤노코는 지금...

입력 2014-08-08 00:00
업데이트 2014-08-0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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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노코는 바다가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걸 파괴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지난 5일 밤 오키나와(沖繩)현 나하(那覇)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택시를 탄 기자에게 70대로 보이는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현 남부 기노완(宜野彎)시의 미국 해병대 후텐마(普天間) 기지(비행장)를 현 북부 나고(名護)시의 헤노코(邊野古) 연안으로 옮긴다는 아베 내각과 오키나와현 정부의 방침을 지지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투박한 사투리에는 점점 격정이 더해졌다. “미군도 그렇고 일본 정부도 그렇고 오키나와를 아직 지배하고 있다는 의식이 있다”며 “오키나와는 자기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879년 오키나와의 류큐(琉球)왕국이 에도(江戶) 막부에 복속당하고, 종전후에도 1972년 일본에 복귀하기까지 27년간 미국의 지배를 받았던 오키나와의 비애를 말한 것이다.

그는 기자가 ‘중국, 북한을 견제하는데 오키나와가 갖는 군사적인 중요성은 일본 정부로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중국이나 북한과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공격당하는 것은 오키나와”라고 맞받아친 뒤 “그런데도 오키나와 사람들은 너무 순하다”고 푸념하듯 말했다.

이 할아버지 택시기사의 말은 멀게는 주민 4분의 1이 숨진 태평양전쟁, 그보다 가깝게는 27년의 미군 점령기를 거친 오키나와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정서를 대변했다. 일본 국토의 0.6%에 불과한 땅에서 주일 미군기지 및 시설의 76%를 짊어진 오키나와인 상당수에는 ‘버려진 자식이기에’라는 피해의식이 잠재돼 있다고 한다.

특히 최근 중국의 부상 속에 미국·일본에게는 중국의 해양진출을 견제하는 ‘전초기지’이자 ‘국가전략의 요충지’로 오키나와가 더욱 중요해졌지만 그럴수록 현지인들이 감당해야 할 희생과 부담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아베 정권의 집단 자위권 강행, 중국 위협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5일 발표된 일본 방위백서 등을 계기로 ‘갈등지수’가 높아지는 가운데, 6일 아침 동아시아 ‘신(新) 냉전’의 최전선에서 ‘No(노)’를 외치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나하시의 숙소에서 완행버스를 2시간여 타고 찾아간 나고시 헤노코만의 미군기지 ‘캠프 슈와브’의 출입구 앞에는 2004년부터 10년 동안 줄기차게 기지이전 반대시위를 하는 주민들의 농성장이 있었다. 나고시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생명을 지키는 모임’이 결성된 시점부터 계산하면 17년간 이어진 투쟁이었다.

섭씨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 속에 현지 주민과 타지방에서 온 미군기지 반대운동가 등 약 40명이 천막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들은 이날 69주기를 맞은 히로시마(廣島) 원폭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으로 하루를 연 뒤 오전 8시40분부터 경찰들이 진을 친 바리케이드 앞을 돌며 ‘새 기지 반대’, ‘매립공사 불가’ 등의 구호를 외쳤다.

피켓들과 함께 헤노코의 상징물인 듀공 모양의 대형 풍선이 등장한 시위는 비장하기보다는 다소 유쾌해보였고, 그래서 더욱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운동의 원년멤버인 아시토미 히로시(68·安次富浩) 헬기기지반대협의회 공동대표의 말에서는 자신들의 긴 싸움이 헛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는 “헤노코로의 기지 이전에 찬성해온 집권당(자민·공명)과 무소속 국회의원 중 일부가 반대로 돌아섰는데, 그것은 우리의 운동이 현 밖에서도 중앙정부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뜻”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의 제주 강정마을 관계자들과도 교류해온 아시토미 공동대표는 또 오키나와의 기지반대 운동이 한국에서의 기지반대 운동과 한 가지 다른 점은 “보·혁(보수와 진보)을 넘어선 것”이라고 자평했다.

중일간의 신경전이 고조되는 가운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집단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등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 만들기에 진력하고 있기 때문인지 시위 참가자들의 외침은 대부분 반전(反戰) 메시지였다.

다이라 오사무(82) 목사는 “주권자가 ‘노(No)’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기지건설을 반대하는) 우리 쪽에 정의가 있다”며 “구체적인 저항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외쳤다. 또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전쟁이고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군대고 기지다”라며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렸다.

처음 시위에 참가한 대학 2학년 여학생 오야기 아이노(19·오키나와 나하시 거주)씨도 “미군기지 건설에 따른 환경 파괴도 문제지만 전쟁에 협력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당차게 말했다.

이들의 투쟁은 지금 최대의 기로에 서 있다.

중국위협에 맞선 미일동맹 강화를 명분으로 집단 자위권 행사를 용인한 아베 총리는 연내에 매듭짓기로 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과 함께 중요한 동맹 현안인 오키나와 기지 이전 공사를 신속하게 강행할 태세이기 때문이다.

집단 자위권 행사를 용인한 7월1일, 헤노코 연안의 상시 출입제한 구역 확대 방안을 결정한 것이 단적인 예였다. 또 최근 헤노코 앞바다에는 기지건설 반대 운동가들을 통제하기 위한 해상보안청의 대형 선박들이 등장했다. 각종 현안에서 힘으로 반대를 돌파해온 아베 정권은 집단 자위권 결정 때 그랬듯 속전속결로 기지 이전 공사를 강행하고 그로 인해 물리적 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긴장감이 시위 참가자들의 말에서 느껴졌다.

헤노코의 운동가들은 오는 11월 오키나와 지사선거가 중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베 정권이 미는 나카이마 히로카즈(74·仲井眞弘多) 현 지사와 현내 기지이전에 반대하는 후보 중 누가 이기느냐는 기지 이전 문제의 향배에 큰 변수가 될 것이란 얘기였다.

기지 이전 문제가 장기화하는 동안 주민들의 피로감이 커진 탓에 민가 가까이에 위치한 후텐마 기지를 하루라도 빨리 철거하길 바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고 헤노코 새 기지 건설이 가져올 건설수요 등 경제적 효과에 관심을 두는 이들도 있다. 때문에 아베 정권의 대대적인 지원 공약들이 제시될 경우 선거 결과는 속단을 허락하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기자가 5∼6일 만난 오키나와 시민 중에는 헤노코 기지 건설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나고시청 근처의 한 음식점 여주인은 “새로운 상업의 기회가 생기는 등의 경제효과를 생각하면 찬성하는 쪽”이라고 말했고, 나고시청에서 만난 회사원 다나카 요시하루(54)씨는 “헤노코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지 않을까”라며 “찬반 중 어느 쪽이라고 굳이 말하자면 찬성”이라고 말했다. 헤노코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18살 남학생 2명도 대안부재 등을 거론하며 소극적인 찬성론을 폈다.

미군기지 반대세력으로서는 여론조사 수치상 높게 나타나는 기지 현내 이전 반대 여론을 어떻게 결집시키느냐는 숙제를 안은 셈이다.

헤노코를 떠나기 전 헤노코 해안의 기지건설용 매립 대상지를 근처에서 둘러봤다. 멀리서 보면 ‘인어공주’를 연상시킨다는 듀공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여름의 에메랄드빛 바다는 뛰어들고 싶은 충돌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미군기지 시설로의 주민 진입을 막기 위해 모래사장에 쳐 놓은 펜스였다. 대화는 실종된 채 ‘칼 가는 소리’만 요란한 동아시아의 ‘소통단절’이 떠올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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