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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범에 ‘소란죄’ 적용…대부분 집유”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범에 ‘소란죄’ 적용…대부분 집유”

입력 2015-09-01 22:35
업데이트 2015-09-0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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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민단, 당시 경찰 증언 공개…日검·경 ‘은폐급급’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1923년 9월 1일) 당시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인들이 살인이 아닌 소란죄로 기소됐고, 그마저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는 관계자 증언이 공개됐다.

또 일본 검찰과 경찰이 결정적인 증인을 심문하지 않거나 진실을 말하지 말것을 회유하는 등 사안에 대한 은폐를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도쿄지부가 학살 92주기를 맞이한 1일 펴낸 증언집에 따르면, 대지진 사흘뒤인 1923년 9월 4일 당시 사이타마(埼玉)현 혼조(本庄) 경찰서 순사였던 아라이(新井) 씨는 조선인 수십명이 일본인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되는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다.

아라이의 증언에 의하면 학살 14일 후인 1923년 9월 18일 사건 관계자의 검거가 이뤄졌지만 피의자들은 살인죄가 아닌 소란죄 적용을 받았다.

학살에 관여한 수백명 가운데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몇명 있었지만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복역한 사람은 3∼4명에 그쳤던 것 같다고 아라이는 증언했다.

또 재판 과정에서 검사는 학살의 모습에 대해 증인들에게 최대한 묻지 않으려 했다. 특히 사건의 전체 과정을 지켜본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고 아라이는 소개했다.

아울러 ‘안도 형사부장(경찰로 추정)’으로부터 ‘실상을 증언하지 말고 피해자가 조선인과 일본인 반반이었다고 증언하라’는 등의 강요를 받고 그대로 따랐다고 아라이는 밝혔다.

간토대지진 발생 후 혼란스런 상황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고 다닌다’는 유언비어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도쿄, 지바(千葉)현, 가나가와(神奈川)현 등 간토 일원에서 조선인 수천 명이 일본군과 경찰, 자경단 등에 학살됐다.

일본 정부가 나서지 않고, 한국 정부도 일본에 대한 조사 요구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사건이 발생한 지 92년이 지나도록 진상 규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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