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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공직생활 7번째 방미…미중관계 발전사 담겨

시진핑, 공직생활 7번째 방미…미중관계 발전사 담겨

입력 2015-09-22 13:36
업데이트 2015-09-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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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허베이성 현서기로 아이오와주 첫 방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2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첫 국빈 방문을 포함하면 개인적으로는 총 7번째로 미국을 찾게 된다.

시 주석이 공직생활 30여년에 걸쳐 6차례 진행한 미국 방문은 1979년 미중 수교 이래 미중 관계의 발전사와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반관영 통신사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은 22일 시 주석의 과거 6차례 미국을 방문했던 상황을 소개하면서 그의 방미 행보가 미중관계 발전사의 한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도에 따르면 그가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85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 서기였던 그는 대표단을 이끌고 미국 아이오와 주를 찾았다.

수교 초창기였던 당시는 양국에서 민간 및 지방정부 간 교류가 막 시작되던 때였고 1983년 허베이성과 아이오와주는 자매결연을 한 상태였다.

시 주석은 2박3일간 현지인 부부의 집에 머물면서 환대를 받았고 현지인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다고 한다.

그의 2~3번째 방미는 1990년대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시에서 근무할 때 이뤄졌다.

그는 푸저우시 당서기 시절 미국에서 현지 도시계획 건설을 배워가 푸저우시를 현대화된 도시로 만드는데 매진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당시 그를 만났던 인사들은 그가 “겸손하고 신중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치고 호기심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시 주석은 1985년 자신을 환대해 준 미국인 부부를 잊지 않고 1992년 방문했을 때 따로 만나 감사인사를 전했고 1990년대에 만났던 현지인 유학생에게는 매년 춘제(春節·중국의 설) 때 연하장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4번째 방미는 2006년 5월 저장(浙江)성 당서기 시절에 이뤄졌다.

그는 대표단을 이끌고 워싱턴, 뉴욕, 뉴저지 등을 찾아 경제무역 협력에 매진했다.

처음부터 4번째까지의 방문은 한창 발전 속도를 높이고 있던 중국이 선진국인 미국을 배우고 교류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셈이다.

그의 지도자로서의 방미 행보는 차기를 예약한 국가부주석 신분이던 2012년 2월부터 본격화됐다.

그는 5번째 방문에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 등 오랜 친구(老朋友)를 만나고 중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도 관람했다.

그는 “중미관계가 잡기 어려운 발전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며 앞으로의 미중관계 발전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6번째 방문은 2013년 6월 국가주석 취임 후 처음으로 이뤄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당시 시 주석을 위해 캘리포니아주 란초미라지 서니랜즈에서 격식을 갖추지 않은 파격 회동을 준비했고 양국 정상은 신형대국 관계 구축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중국신문망은 시 주석의 6번에 걸친 미국 방문을 통해 초창기 생소했던 중미관계가 성숙하게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과거 미국을 벤치마킹하고 배우는데 초점을 뒀던 중국이 국력이 급성장하면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섰다는 점도 시 주석의 방미 기록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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