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상 흑인 사회자 ‘흑인차별 비판하며 아시아인 비하’

아카데미상 흑인 사회자 ‘흑인차별 비판하며 아시아인 비하’

입력 2016-03-01 16:29
수정 2016-03-0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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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배반적 농담에 아시아계 미국인들 실소·빈축

‘백인들만의 잔치’라는 오명 속에 치러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재치있는 입담으로 흑인들의 입장을 대변한 흑인 사회자가 정작 아시아계를 비하하는 이율배반적인 농담을 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88회 시상식에서 사회를 맡은 배우 겸 코미디언 크리스 록은 “흑인들의 불참 사태 때문에 사회를 거절할까 고민했다”며 백인 위주의 아카데미상에 여러 차례 뼈있는 농담을 던져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시상식 도중 서류 가방을 들고 무대에 오른 3명의 아시아계 어린이를 ‘프라이스워터하우스’의 회계사들이라고 소개하며 빈축을 자초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는 아카데미 수상작에 대한 투표 집계를 담당하는 국제 회계·컨설팅 법인이다.

그의 이런 발언은 수학에 뛰어난 부지런한 노동자라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록도 이를 의식한 듯 “이 농담이 불편한 사람은 이 아이들이 만든 스마트폰으로 트윗을 하라”고 덧붙였다.

이 말은 아시아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아동 노동 착취를 떠올리게 하며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중국계 여배우 컨스턴스 우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어린 아이들을 단순히 무대 위에서 행진시키며 인종주의적 농담의 대상이 되게끔 한 것이 역겹다”는 글을 올렸다.

배우 제프리 라이트 역시 트위터에 “(록의 발언은)재조정돼야 할 농담”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 인권 증진 단체의 대표인 미 마우아는 시상식 다음 날 성명을 내고 “어젯밤의 시상식, 특히 아시아계 어린이들과 관련된 농담은 아시아인과 아시아계 미국인을 둘러싼 치명적인 고정관념을 드러냈다”며 “미국의 인종이 흑인과 백인 두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아시아계 작가인 자야 순다레시는 이날 시상식에 대한 반발로 아카데미 역사상 단 1%의 아시아계 미국인만이 수상 후보에 올랐음을 지적하며 ‘오직 1%’(only 1%)'라는 해시태그를 달 것을 자신의 SNS 팔로워들에게 촉구하기도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뿐 아니라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소외됐음을 비판하는 의견도 잇따랐다.

전미히스패닉예술재단의 공동 창립자인 펠릭스 산체스는 “시상식에서 라티노와 아시아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며 “이는 미국 사회가 여전히 백인과 흑인으로만 구성됐다는 편협한 사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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