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에선 격렬한 이슈로 언론 어젠다 장악 성공”“온건한 전체 유권자 상대 선거전에선 역풍 될 듯”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길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압축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논리적 근거나 비약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최근 뉴욕타임스(NYT)가 그의 여자관계를 집중 보도하자 트럼프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여자들에 대해선 솔직히 보도하지 않고 나에게 마녀사냥식 보도를 하고 있다. 모두가 망해가는 NYT의 바보 같은 기사를 비웃고 나를 격려하고 있다. 난 승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시 자신을 비판하는 워싱턴포스트(WP)에 대해서는 사주인 제프 베저스(아마존 창업주)를 겨냥했다. “WP는 베저스의 장난감이다. 베저스가 WP를 인수해 아마존의 조세회피처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이 모든 언급은 140자 이내로 글을 올려야 하는 트위터를 통해 나왔다. 짧고 날카로운 억양과 무수한 느낌 부호들, 젊은 세대의 유행어로 득 찬 트럼프의 트위터 피드는 일반적인 정치인들의 도덕적이고 뻔한 트윗 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가 트위터로 어떤 이슈나 인물에 대해 직설적인 공격을 퍼붓고 사람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으면 이것은 곧바로 인터넷, 신문, 방송에 그대로 보도되고 그날의 메인 이슈와 쟁점으로 증폭되기 일쑤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는 트위터를 통해 사실상 그날의 언론 어젠다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실리콘 밸리가 도널드 트럼프 부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세간의 우스갯말들은 기실 어느 정도는 사실인 셈이다.
하지만 그의 ‘트위터 언론 전략’이 본선에도 통할 수 있을까.
NYT는 18일 “인터넷이 지금까지 트럼프의 비밀 무기였다면, 이제 곧 그의 아킬레스건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1기 선거캠프 책임자였고, 지금은 스타트업 우버의 최고경영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플로프는 “11월 총선이 지금까지의 경선과 마찬가지로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트럼프의 최대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선에서의 유권자들, 특히 트럼프 지지자들과 11월 총선에서의 유권자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가 11월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과거 오바마를 지지했던 사람들, 그리고 이전에는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투표장으로 끌어와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온건한 시각을 갖고 있으며, 트럼프의 트위터 언어에 열광하는 대신, 오히려 역겨움을 표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변해야 한다. 하지만 트위터는 본질적으로 트럼프의 변신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국경 장벽을 친다’든가, ‘무슬림 입국을 금지’한다는 등의 격렬한 이슈에서 벗어나 절제된 언어로 국가적 이슈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는 ‘140자 트위터’는 적절한 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가 자신의 트럼프 타워 빌딩 사무실에서 멕시코의 5·5 국경일인 ‘싱코 데 마요’를 축하하기 위해 타코를 먹으면서 ‘나는 히스패닉을 사랑해요’라고 말한 것이 SNS에 올랐다. 이 트윗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반향은 트럼프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에게 구애하려던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그의 타코 포스트는 ‘서투른 뚜쟁이’라는 조롱과 질타를 받았을 뿐이다.
NYT는 “그의 무차별적이고 초점 없는 메시지 남발은 많은 대중을 끌어모으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본선 무대에서는 어떤 유권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지를 신중하게 판단하고 전략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만약 그렇지 않고 경선과 마찬가지로 본선에 임한다면 그는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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