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타쿠(忖度)’ 유행어 대열…“다수에 달라붙는 나쁜 습관” 문화반성론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그의 아내 아키에(昭惠)가 한 사학재단의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에 연루됐다는 이른바 ‘아키에 스캔들’로 시끄러운 일본에서 ‘손타쿠’(忖度)라는 단어가 유행어처럼 퍼졌다.

손타쿠는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림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누가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지만 스스로 알아서 그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말로는 ‘알아서 기기’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4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손타쿠가 아키에 스캔들과 관련, 트위터 등 SNS에서 자주 사용되면서 ‘올해의 단어’로 유력시되고 있다.

이 단어는 중국 고서 ‘시경(詩經)’에 등장하지만,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잘 사용되지 않았으나 최근 뜨고 있는 것이다.

아키에 스캔들을 추궁하던 한 야당 의원이 비리 대상으로 지목된 문제의 초등학교 인가 과정에서 재무성의 손타쿠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추궁하면서 일본 사회에서 모두가 아는 유행어 대열에 올랐다.

이런 현상은 일본 문화에 대한 비판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적인 애매함을 상징한다”, “다수파에 달라붙으려는 일본인의 나쁜 습관이 나온 것”이라는 등의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정치인인 총리나 내각 각료에 알아서 기는 것이 습관이 돼 관료의 역량이 저하된다는 지적도 많다.

손타쿠로 소리소문없이 비위가 행해지는 만큼 정책 결정의 기록이 남지않아 처벌이 힘든 문제도 있다.

도쿄신문은 손타쿠가 정계뿐 아니라 문화계, 언론계, 학술계를 막론하고 널리 퍼졌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가 개헌 의욕을 강조한 2014년 이후 행정기관이 ‘헌법’이나 ‘평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시민들의 이벤트를 규제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공영방송 NHK는 아키에 스캔들에 대한 적극적인 보도를 ‘알아서’ 안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일본 과학자들의 대표기관인 일본학술회의가 군사연구를 금지하는 성명을 냈는데, 이 성명에 애매한 표현이 많은 것에 대해 학계에선 일부 학자들이 정치인의 눈치를 보며 ‘손타쿠’를 행해 주장을 얼버무리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강한 여당인 자민당 내에서는 제명되면 선거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우려 때문에 알아서 총리 등 당 주류에 반발하지 않는 손타쿠가 횡행하고 있다.

센슈(專修)대학 오카다 겐지(岡田憲治) 교수는 “민주주의는 보통의 사람이 모여서 합의를 형성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실수가 나오기도 한다”며 “손타쿠는 실수를 미리 검증해 정책의 수준을 높이는 것을 가로막아 민주주의를 파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