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 대부분, 자기도 모르게 저항능력 마비돼”

“성폭행 피해자 대부분, 자기도 모르게 저항능력 마비돼”

입력 2017-06-11 11:38
수정 2017-06-1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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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연구 “법적 판단과 후유증 치료 등에 반영해야”

성폭행을 당할 때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정상적’ 행동이라는 관념이 퍼져 있고, 피해자 저항 여부가 가해자 처벌 등 법적 판단에 중요 참고자료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여성 피해자들 대부분은 성폭행을 당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저항능력이 마비되는 이른바 ‘긴장성 부동화’(tonic immobility : TI) 상태에 빠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TI는 사람 등 동물이 긴장이나 공포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몸이 굳어 꼼짝도 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온라인 과학매체 ‘과학지식리포트’(KSR)에 따르면,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안나 몰라 박사팀은 스톡홀름의 ‘강간 피해자 응급 클리닉’에서 치료받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TI 경험과 후유증 등을 조사했다.

성폭행 한 달 내 면담한 피해 여성 298명 가운데 70%가 성폭행 당시 ‘상당한 정도’의 TI를 겪었다. 전체의 48%는 극심한 정도‘였다고 답했다.

또 6개월 뒤 평가한 결과 성폭행 당시 TI를 겪은 피해 여성의 경우 그렇지 않은 피해 여성에 비해 나중에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성 증후군‘(PTSD)을 앓을 위험이 2.75배 컸다.

PTSD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발생할 수 있는 정신·신체적 병리 증상들로 이루어진 질환이다.

TI를 겪은 피해 여성의 경우 심한 우울증을 앓을 위험이 3.42배나 더 컸다.

이는 저항하기 어렵고 저항하면 더 위험해질 상황이었음에도 자신이 적극 저항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당했다는 자책감과 괴로움 등으로 인해 피해자의 후유증이 더 심해진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는 성폭행 당시 피해 여성의 긴장성 부동화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몰러 박사는 “이 정보는 희생자들이 당면하게 되는 법적 상황이나 심리치료와 교육 차원에서 유용하다”면서 “나아가 이를 의대생이나 법대생 등의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는 학술지 ’스칸디나비아 산부인과학 저널‘(AOeGS) 최신호[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aogs.13174/abstract;jsessionid=0FFF296578531F6D34CD73AECB61929A.f04t04]에 실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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