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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88세 한국전 노병 “이제 끝났다” 울컥… 전사자 이름새긴 ‘추모의벽’

[르포]88세 한국전 노병 “이제 끝났다” 울컥… 전사자 이름새긴 ‘추모의벽’

이경주 기자
이경주 기자
입력 2022-07-27 13:32
업데이트 2022-07-2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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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미군 4만 3000여명 새긴
워싱턴 추모의 벽 제막행사 열려
유족들 한 목소리로 ‘영예로운 순간’ 
윤석열·바이든 대통령 축사 대독할듯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에 새겨진 한국전 전사자의 이름들. 이경주 워싱턴 특파원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에 새겨진 한국전 전사자의 이름들. 이경주 워싱턴 특파원
“이제 (내 바람은) 끝났다.”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미군 전사자 4만 3808명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 앞에서 26일(현지시간) 만난 노병 로버트 자무디오(88)는 전우의 이름을 찾은 뒤 이렇게 말했다.

한국전 당시 원산 인근에서 해군으로 복무했던 그는 한 동네에서 자란 제임스 크리번의 이름이 새겨진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당시 18세였던 크리번은 해병대 소속으로 1953년 3월 26일 경기 연천군 장남면 매향리 지역에서 전초기지를 방어하다 중국군 3000여명의 공격에 동료 40여명과 전사했다.

자무디오는 “내가 먼저 미국에 돌아왔고 편지로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갑자기 답장이 안 왔다”며 울컥해 눈물을 훔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우들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을 마련하도록 재정적으로 도운 한국 정부에 감사의 뜻을 전했고, 추모의 벽을 본 기분을 묻자 “완료(completion)”라는 한 단어로 답했다.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에서 만난 쟌넷 쉘버그가 한국전에서 실종된 오빠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이경주 워싱턴 특파원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에서 만난 쟌넷 쉘버그가 한국전에서 실종된 오빠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이경주 워싱턴 특파원
한국전 용사지만 유골마저 찾지 못한 오빠의 이름을 추모의 벽에서 발견한 쟌넷 셀버그(71)는 “이곳은 내게 (오빠의) 묘소와 같은 곳”이라고 했다. 한국전 실종 미군은 모두 사망자 처리가 되기 때문에 그의 오빠 이름도 추모의 벽에 새겨졌다.

그의 오빠 조셉은 19세 때 1950년 11월쯤 ‘청천강 전투’에 참여했다 실종됐다. 그가 입은 티셔츠에는 오빠의 사진과 실종 장소, ‘결코 잊지 말라’(Never Forget)는 문구를 새겨져 있었다. 그는 “그들(북한)이 유해들을 찾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곳을 찾은 한신희(72)씨도 아버지 이름인 ‘SANG SUN HAN’(한상순)을 찾은 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너무 기뻐하실 거다. 혼을 풀어드린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곳 전사자 명단에는 카투사(주한미군 배속 한국군) 소속 7174명의 이름도 포함돼 있다. 아버지 한씨는 미군 제7사단 17연대에 배속돼 복무했고, 경기 연천 천덕산 ‘폭찹힐 고지 탈환 전투’에서 중국군과 싸우다 포탄을 맞고 1952년 7월 전사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 제막식을 앞두고 유족들을 위한 특별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경주 워싱턴 특파원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 제막식을 앞두고 유족들을 위한 특별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경주 워싱턴 특파원
추모의 벽 조성사업은 미 현지에서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참전비와 달리 한국전 기념비에는 전사자 이름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2008년 시작됐다. 미국 메모리얼데이(현충일)인 지난 5월 30일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한국전 정전협정일인 27일 공식 제막식을 갖는다. 한미 각국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할 예정이다. 이날은 제막식을 하루 앞두고 유족들을 위한 특별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박민식 보훈처장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포화 속으로 뛰어든 영웅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고, 조태용 주미한국대사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족들의 희생 덕분에 한국은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을 이뤘다”고 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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