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사람들에게 트럼프는 왜 악몽인가

월가 사람들에게 트럼프는 왜 악몽인가

입력 2016-03-24 17:03
수정 2016-03-2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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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불허 인물’ 평가 주류, 대외정책 불확실성도 한 몫

뉴욕 월가의 증권거래소와 연방준비제도(FED) 건물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소유의 70층짜리 마천루다. 이 상징적인 건물은 그가 월가의 중심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월가 사람들에게 트럼프는 악몽 같은 존재다. 과거 그의 회사들이 파산했을 때 그는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큰 은행들’이라고 말해 월가 은행가들을 분노케 했다. 또 월가에서 존경을 받는 JP 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을 향해 “최악의 은행가”라며 수모를 주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월가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을 향해 “한 갓 사무원에 불과한데 엄청난 돈을 벌면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뉴욕의 주요 기업과 투자은행 CEO 300여 명을 회원으로 가진 비영리단체 ‘파트너스 포 뉴욕시티’의 캐슬린 와일드 회장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사업가는 신중하게 행동하고 불필요한 논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서 “트럼프는 전혀 예상하기 어려운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WP는 24일 10여 명의 월가 은행가 및 임원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월가는 왜 트럼프를 우려하는가’라는 기사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트럼프를 불가예측하고 매우 호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면서 그가 대통령이 되면 월가엔 악몽이 될 것을 예고했다.

월가에서 20년을 보냈다는 한 베테랑 투자가는 WP에 ”월가는 정책 입안가들과 시장 사이에서 긴밀히 협력하는 관계“라면서 ”트럼프가 억만장자라고는 하지만 그는 우리의 일원이 아니다. 그는 훼방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투자가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에 대비해 리스크 감소 전략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시브리즈 파트너스 헤지펀드의 매니저 더글러스 카스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시장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트럼프는 불가예측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지난주 경선에서 더욱 강세를 보이면서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를 일부 거둬들였다고 덧붙였다.

3천500억 달러의 자금을 운용하는 뉴욕 페더레이티드 인베스터스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필 올란도도 지난 1월 중순 이후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자산 운용 전략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선거는 불확실성이 최고에 달해 있다“며 자신의 리스크 최소화 전략이 정치적 이유, 즉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 2일 대선 경선의 분수령으로 불렸던 ’슈퍼 화요일‘ 당일 뉴욕증시는 건설, 제조업 지표 등이 예상치를 상회했고,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경기평가도 긍정적으로 나왔지만, 주가는 보합세에 그쳤다. 11개 주 경선에서 트럼프가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증시를 짓눌렀다고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전했다.

트럼프의 경제 관련 언급을 보면 뒤죽박죽이다. 그는 이민 정책이나 월가의 행태에 대중영합적 비판을 퍼붓고, 보호주의를 펼 것처럼 미국의 우방들을 협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법인세 감세와 세법 단순화 같은 비즈니스 친화적 메시지도 보내고 있다.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그의 대외경제정책으로 보인다고 포천은 분석했다.

중국에 대해 환율 조작국이라고 공개딱지를 붙이는가 하면, ’불법 수출 보조금‘과 ’지적 재산권 도둑질‘ 같은 언급을 서슴지 않는다. 또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하는 미국 기업에 대해 페널티를 주겠다고 하고,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울 것이라고까지 했다.

포천은 ”글로벌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데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글로벌 교역이 더 감소하고 이는 미국은 물론 글로벌 성장을 저해하면서 결국 미국 기업들을 해롭게 할 것“이라면서 ”무역 정책과 외교 관계에서 최대의 불확실성을 띠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가 일각에서는 그의 무절제한 사업 스타일이 국가 경영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론도 제기한다.

그가 과거 부동산 개발업을 할 때 엄청난 빚을 지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나, 트럼프 타지마할과 트럼프 플라자 호텔 등의 경영실패로 파산 보호를 신청했던 과거 그의 실패 사례들도 회자된다.

CRT 캐피털 그룹의 수석 채권 분석가인 데이비드 아더는 ”그가 대통령이 되면 국가 예산을 어떻게 쓸지 예상할 수 있다. 카지노 운영도 제대로 하지 못한 그가 방대하고 복잡한 정부 조직을 운영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월가 투자가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가 미국의 군사력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으니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군수산업 주식을 사둬야 할 것이라느니, 안전한 미국 국채에 투자자들이 더욱 몰리게 될 것이라는 말이 월가에서 떠돌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월가의 이런 트럼프 혐오증이 그의 대중적 기반을 확장하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다. 그가 월가를 비난하고, 월가와의 논쟁이 커지면 커질수록 유권자들은 트럼프에게 더 가까이 가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를 월가라는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가 억만장자라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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