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전, 푸틴 비판 칼럼 뉴욕타임스에 보내
저돌적인 스타일로 미 외교 전성시대 열어
바이든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손” 추모
독수리 브로치 단 올브라이트
체코 난민 출신으로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에 오른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2016년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 브로치를 달고 연설하고 있다.
2022.3.24 AFP 연합뉴스
2022.3.24 AFP 연합뉴스
● 나치와 공산당 피해 미국으로 이주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오른쪽)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2022.3.24
평양 AP 연합뉴스
평양 AP 연합뉴스
● 외교계 거두 브레진스키의 제자로 백악관 입성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2000년 2월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과 악수하고 있다. 2022.3.24
모스크바 AP 연합뉴스
모스크바 AP 연합뉴스
● 동유럽 나토 가입 추진…서방의 동진 이끌어
1998년 4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넘겨받고 있다. 2022.3.24 베이징 AFP 연합뉴스
체코와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승인한 것은 올브라이트의 주요한 외교적 업적으로 꼽힌다. 오늘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구실이 된 나토의 동진, 즉 서방 동맹의 구소련 진출의 시작점에 그가 있었던 셈이다.
23일(이하 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지난 1997년 3월 12일 당시 퍼스트레이디였으며 나중에 국무장관이 된 힐러리 클린턴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무부 여성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올브라이트는 북미 관계 해빙기를 이끈 장본인이기도 했다. 2000년 10월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비핵화를 논의했다.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올브라이트는 1994년 르완다 내전 문제 해결을 위해 연합군 개입을 추진했지만 불과 1년 전 소말리아 내전 진압에 실패해 궁지에 몰린 클린턴 정부는 강하게 반대했다. 르완다의 소수 지배층인 투치족과 다수의 후투족 사이에 일어난 부족 갈등으로 1994년부터 2년간 80만명 이상 사망했다. 올브라이트는 훗날 르완다 집단학살을 막지 못한 것을 가장 크게 후회한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2000년 10월 23일 평양을 찾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찬을 갖기에 앞서 인삿말을 하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이 밖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중재하려 애썼지만 긴장을 완화하는 데 실패했고 대북 포용 정책을 발판으로 한 북한 비핵화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북한에는 포용적이고 이라크에는 제재를 주장하는 등 오락가락했던 올브라이트의 외교 전략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에게 국무장관직을 빼앗긴 오랜 라이벌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 주재 대사가 대표적이다. 비평가들은 올브라이트가 미국이 언제, 어느 지역의 문제에 관여해야 하는지 일관된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고 포린폴리시(FP)는 전했다. 그럼에도 올브라이트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갈등이 21세기 내내 계속 되리라는 것을 예견했다고 FP는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2년 5월 백악관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에게 자유의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이 메달은 미국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이다.
2022.3.24 AFP 연합뉴스
2022.3.24 AFP 연합뉴스
CNN은 올브라이트가 종종 브로치에 외교적 메시지를 담는 것을 즐겼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미국 국무부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올브라이트는 커다란 벌레 핀을 꼽았고,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자신을 뱀이라고 부르자 보란 듯이 금색 뱀 브로치를 가슴에 달았다. 마녀라고 불렸을 때는 작은 빗자루를, “자립할 수 있는 이민자들만 미국에서 환영받을 것”이라는 이민국 켄 쿠치넬리 국장의 발언에 반발해 자유의 여신상 브로치를 달았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일제히 애도성명을 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의 손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손이었다”며 “그녀의 열정적 믿음을 항상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향한 열정적인 힘”이라고 치켜세웠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다른 이의 그것을 실현하도록 도왔다”며 애석해했다.
유족으로는 앤, 앨리스, 케이티 등 3명의 딸과, 6명의 손자가 있다.
오달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