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산불로 타버린 알타데나의 ‘토끼 박물관’(왼쪽). 토끼 박물관 운영자 스티브 루반스키(오른쪽)가 화재 진화 작업 중 울먹이며 인터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KCAL방송 캡처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에서 발생한 산불로 천문학적인 피해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역 명물이었던 ‘토끼 박물관’도 잿더미가 됐다.
40년 가까이 토끼 관련 소품을 모아 박물관을 운영해 온 남성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울먹이면서도 박물관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9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타임스)와 현지 방송국 KCAL 뉴스 등에 따르면 LA 북부 알타데나의 레이크 애비뉴에 있는 토끼 박물관에도 지난 8일 화마가 덮쳤다.
토끼 박물관은 스티브 루반스키와 캔디스 프레이지 부부가 운영하던 곳으로 4만 6000개 이상의 토끼 관련 수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루반스키 부부는 서로를 ‘버니’(토끼)라는 애칭으로 부르면서 토끼 모양의 소품을 선물하다가 관련 수집품을 하나둘씩 모은 것이 박물관으로 이어졌다.
전시품 중에는 루반스키가 아내 프레이지에게 처음 선물한 토끼 인형을 포함해 수백개의 미니어처 도자기 토끼, 토끼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 토끼 모양의 쿠키 단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등 토끼와 관련된 영화 포스터, 토끼 의상, 토끼를 소재로 한 책 등 다양한 토끼 소품이 있었다.
다양한 토끼 관련 물품과 숫자로 루반스키 부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토끼 수집품 보유’라는 주제로 기네스 세계기록을 인증받기도 했다.
2024년 9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토끼 소품을 보유한 것으로 기네스 세계기록을 인증받은 토끼 박물관 운영자 스티브 루반스키·캔디스 프레이지 부부. 기네스 세계기록
불이 박물관을 집어삼켰을 때 루반스키도 직접 나서 소방 호스를 들었다. 부부는 불이 점점 번져오자 몇몇 토끼 소품과 실제 키우는 토끼 ‘도리스’와 ‘니키’, 그리고 고양이만 챙겨서 빠져나와야 했다.
직접 불을 끄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KCAL 방송과 인터뷰에 나선 루반스키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얼굴 곳곳에 그을음이 묻은 채 카메라 앞에 선 루반스키는 울먹이며 “우리에게 상징적인 알타데나 올드타운 전체가 사라졌습니다”라면서 “이 충격이 한동안 가시질 않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는 “아내와 제가 이 박물관을 완성하는 데 거의 40년이 걸렸어요”라면서 “이렇게 됐지만, 우리는 계속 나아갈 겁니다”라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산불로 타버린 알타데나의 ‘토끼 박물관’. AP 연합뉴스
9일 아내 프레이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토끼 박물관을 같은 자리에 재건하겠다고 팬들과 약속했다.
한편 LA 산불은 닷새째인 11일에도 계속 확산하면서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당국은 연방정부 등의 지원을 받아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대형 화재의 진화율은 아직 10%대에 머물고 있다. 다소 수그러들었던 바람이 다시 기세를 올리면서 진화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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