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딸 안아보겠다는 정치범 호소 외면한 필리핀 교정당국

죽어가는 딸 안아보겠다는 정치범 호소 외면한 필리핀 교정당국

임병선 기자
입력 2020-10-15 06:36
수정 2020-10-1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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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일 딸 리버를 출산한 필리핀 여성 정치범 레이나 메이 나시노가 웃고 있다. 나시노는 다음달 생이별을 했고, 딸의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도 교정당국은 딸에게 모유를 먹이고 싶다는 나시노의 청원을 외면했다. 결국 리버는 지난주 세상을 떠났다. 필리핀 정치범 가족 지원단체 카파티드(Kapatid)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지난 7월 1일 딸 리버를 출산한 필리핀 여성 정치범 레이나 메이 나시노가 웃고 있다. 나시노는 다음달 생이별을 했고, 딸의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도 교정당국은 딸에게 모유를 먹이고 싶다는 나시노의 청원을 외면했다. 결국 리버는 지난주 세상을 떠났다.
필리핀 정치범 가족 지원단체 카파티드(Kapatid)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죽음을 앞둔 생후 3개월 된 딸을 옥중에서라도 안아보고 싶다는 필리핀 여성의 호소를 교정당국이 외면해 결국 딸이 외롭게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은 도시 빈곤층을 돕는 카다마이(Kadamay)란 인권단체에서 일하던 레이나 메이 나시노(23). 지난해 11월 마닐라에서 동료 활동가 둘과 함께 체포됐는데 총기와 폭발물을 불법 소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좌파 활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혈안이 된 경찰이 무기 등을 몰래 갖다둔 것이라고 나시노 등은 항변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월경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경찰을 피해 다니느라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가보다 했다. 감옥에서 진찰을 받으니 임신 3개월째라고 했다.

나시노는 엄마가 된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하면서 교정당국에 석방해달라고 청했다. 코로나19을 핑계로 계속 재판을 미루던 사법당국은 지난해 4월 코로나가 확산되자 나시노를 비롯해 22명의 정치범을 석방했다. 그녀를 변호하던 변호사단체는 교도소나 병원에서 모녀가 함께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판사는 거부했다.

지난 7월 1일 리버를 낳았는데 체중 미달인 채로 태어났다. 하지만 나시노는 다음달 13일 감옥으로 돌아갔다. 필리핀 법률에 따르면 엄마와 아기는 첫 한달만 함께 교도소에서 지낼 수 있었다. 물론 예외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말레이시아 교도소에서 출산한 엄마들은 아기가 서너 살이 될 때까지 함께 지낼 수 있다. 영국에서는 생후 18개월 때까지 지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대법원 앞에 촛불을 켠 채 항의시위를 벌였지만 소용 없었다. 나시노의 어머니는 매주 딸의 석방을 청원하는 편지를 당국에 보냈지만 마찬가지였다. 나시노의 출산을 도운 의료진도 아기는 엄마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교도소는 모녀가 함께 지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등 온갖 핑계를 늘어놓았다. 여성 수감자에 대한 처우를 규정한 ‘방콕 룰’에 따르면 언제 아이를 엄마로부터 떼어놓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때를 고르도록 했다.

교도소는 변호사의 접견마저 코로나를 핑계로 허용하지 않아 전화로만 접촉할 수 있었다. 9월부터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리버의 상태가 나빠졌다. 설사를 매우 심하게 했다. 같은 달 24일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지난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레이나 메이 나시노가 지난주 세상을 떠난 딸 리버의 마지막을 지키는 철야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석방돼 수갑을 찬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필리핀 정치범 가족 지원단체 카파티드(Kapatid)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레이나 메이 나시노가 지난주 세상을 떠난 딸 리버의 마지막을 지키는 철야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석방돼 수갑을 찬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필리핀 정치범 가족 지원단체 카파티드(Kapatid)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이 소식이 알려지자 추모와 동정의 글이 소셜미디어에 넘쳐났다. 마침 성전환 여성을 살해한 미군 해병대원을 사면할 정도로 관대한 법원이 여성 정치범에게 가혹하고 잔인하게만 굴었다는 데 분노하는 이들이 많았다. 돈 있고 힘 있는 이들은 자녀 결혼식이나 졸업식에 참석하도록 일시 석방하면서 젊은 정치범에게는 일말의 동정도 없는 것이냐고 따지곤 했다.

궁색해진 법원은 딸의 마지막을 지키는 철야 기도회와 장례 등에 참석할 수 있도록 사흘의 외출을 지난 13일 허용했다. 하지만 교도소장이 개입해 14일 철야 기도회와 16일 안장식 3시간씩만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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