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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협력’ 상징 中 옌볜과기대는 왜 사라졌나

‘한중협력’ 상징 中 옌볜과기대는 왜 사라졌나

류지영 기자
류지영 기자
입력 2022-09-11 15:20
업데이트 2022-09-1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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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소문 없이 폐교된 中 지린성 옌볜과기대(1)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주도 옌지에 자리잡은 옌볜과기대 정문. 정식 명칙은 연변대 과학기술대학이다. 지난해 폐교돼 잡풀이 무성하다. 옌지 류지영 특파원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주도 옌지에 자리잡은 옌볜과기대 정문. 정식 명칙은 연변대 과학기술대학이다. 지난해 폐교돼 잡풀이 무성하다. 옌지 류지영 특파원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옌볜주)가 지난 3일로 창설 70주년을 맞았다. 9·3제(옌볜주 설립 기념일)를 맞은 주도(州都) 옌지는 불꽃 축제와 문예 공연, 전시회 등을 열어 70번째 생일을 자축했지만 조선족의 앞날은 오리무중이다. 100만명 이상 해외 이주로 인한 인구 감소와 노골화되는 중앙정부의 한족(漢族) 동화 기조로 민족 정체성이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어서다.

기자는 9·3제를 맞아 중국의 첫 중외합작대학(외국인 투자대학)인 옌볜대 과학기술대학(옌볜과기대·YUST)를 찾았다. 옌지~룽징 고속도로가 어렴풋하게 보이는 북산가 언덕에 자리잡은 캠퍼스는 너무도 적막했다. 지난해 6월 마지막 졸업생을 내고는 문을 닫은 탓이다. 여느 대학 같으면 9월 개강을 맞아 새내기 대학생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겠지만 여기는 풀벌레 소리가 그대로 들릴 만큼 조용했다. 한때 ‘한중 협력의 상징’으로 각광받던 옌볜과기대는 왜 언론에서조차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을까.
2006년 9월 김진경(왼쪽) 당시 중국 옌볜과기대 총장에게 중국 공안국이 영구 거주증을 주고 있다. 서울신문 DB
2006년 9월 김진경(왼쪽) 당시 중국 옌볜과기대 총장에게 중국 공안국이 영구 거주증을 주고 있다. 서울신문 DB

●재미교포 김진경, 조선족 인재 육성 위해 대학 설립

YUST는 재미 사업가 겸 교수였던 김진경(87) 박사가 기획했다. 1985년 중국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베이징에서 한국 경제학을 강의한 그는 중국에 대학을 짓고 기독교 이념을 전파하기로 마음 먹었다. 구한말 한국을 찾아와 학교를 세운 서구 선교사들의 길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1987년 옌볜주를 찾은 김 박사는 재미교포들과 달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켜가던 조선족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이곳에 대학을 세우기로 했다. 옌볜주는 ‘중국 내 조선족의 중심지’라는 상징성이 컸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를 잇는 경제적 요충지가 될 잠재력도 충분하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중국은 외국인의 대학 설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혈맹인 북한의 요청까지 모두 거절할 만큼 교육 분야 개방에 소극적이었다. 워싱턴 역시 미국 국적의 김 박사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구상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럼에도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89년 옌지시 정부와 ‘옌볜조선족 기술전과학교 합작 설립에 관한 협작서’를 체결할 수 있었다. 버려진 공동묘지터 66만㎡를 30년간 임차해 건물을 세워 1992년 9월 ‘옌볜조선족기술전문대학’이라는 이름으로 1년 과정의 기술교육을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4년제로 확대했다. 당시 중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내 마오얼산에서 내려다 본 옌지의 모습. 옌지 류지영 특파원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내 마오얼산에서 내려다 본 옌지의 모습. 옌지 류지영 특파원
●중국 국립 옌볜대와 합병 통해 법률적 미비 극복

이 학교는 개교 초기 몇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베이징 중앙정부에서는 이 학교가 기독교 이념을 배경으로 조선족 학생 위주로 운영된다는 사실에 불만이 컸다. ‘종교는 아편’이라는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특정 소수민족을 선교하려는 YUST의 운영 방침이 마음에 들리 없었다. 이 학교는 일부 법률적 미비 등으로 정식 졸업장도 발급할 수 없었다. 결국 김 전 총장은 1996년 중국 국립대이자 조선족 계열 종합대학인 옌볜대와의 합병을 선택했다. 형식상 옌볜대의 지배를 받는 단과대학 형태로 바뀌고 중국 공산당의 일부 통제를 받아들이는 대신 학교의 명칭과 운영 방식을 유지키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옌볜과기대는 국가가 인정하는 4년제 정규대학이 될 수 있었고 한국의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가오카오(高考)를 치른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게 됐다.
옌지의 번화가인 옌볜대학 앞을 지나가는 한복 차림 여성들의 모습. 1949년 개교한 옌볜대는 한민족 계열 종합대학으로 중국에서 한국어와 중국어를 함께 쓰는 유일한 대학이다. 1996년 옌볜과기대를 흡수했다. 옌지 류지영 특파원
옌지의 번화가인 옌볜대학 앞을 지나가는 한복 차림 여성들의 모습. 1949년 개교한 옌볜대는 한민족 계열 종합대학으로 중국에서 한국어와 중국어를 함께 쓰는 유일한 대학이다. 1996년 옌볜과기대를 흡수했다. 옌지 류지영 특파원
●한인 동포사회 후원으로 운영…중국 100대 중점대학 선정

옌볜과기대는 짧은 연혁에도 눈부신 성과를 냈다. 전 세계 한인 동포사회의 후원과 한국 기업들의 지원을 더한 YUST는 조선족과 한국 출신 유학생뿐 아니라 한족과 고려인, 재일동포, 북한 출신까지 모집해 ‘글로벌 한민족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학생 비율은 조선족 80%, 한족 17%, 고려인 및 소수민족 3% 정도였다. 한국과 미국, 뉴질랜드, 호주, 영국, 캐나다, 독일 등에서 온 교수진이 250명에 달해 교수 대 학생 비율이 중국에서 가장 낮았다. 졸업생은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를 구사했고 컴퓨터도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YUST 출신을 우대해 취업율이 100%에 가까웠다. 학교가 해외 유학을 적극적으로 장려해 학부 졸업생의 20% 정도가 장학금을 받고 전 세계로 나갔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서 YUST는 ‘100대 중점대학’에 선정될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중국 내 대학이 3000개에 육박하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실적이었다. YUST의 성공은 2010년 북한에 평양과학기술대(PUST)를 설립하는 데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옌지 류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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