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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국민투표 부결…꿈 잃은 청년층 분노에 빛바랜 개혁 명분

伊국민투표 부결…꿈 잃은 청년층 분노에 빛바랜 개혁 명분

입력 2016-12-05 09:15
업데이트 2016-12-0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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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문제·제2의 무솔리니 배출에 대한 우려도 영향 미친 듯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이탈리아의 미래를 걸고 야심차게 추진한 헌법 개정안이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층의 거대한 분노에 막혀 국민투표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탈리아 개헌 투표는 상하원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한 현행 헌법을 고쳐 상원의원 수를 줄이고 중앙 정부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고질적인 정치 불안을 타개해 수 십 년 째 정체된 이탈리아의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4일 실시됐다.

정치 체계를 단순화해 효율성을 높이고, 정치인들의 숫자를 줄여 이들에게 주는 월급 등 비용을 아끼며, 중앙 정부의 권한을 강화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기능 중복에 따른 관료주의의 병폐를 줄인다는 렌치 총리의 개혁 취지에는 대개 동감함에도 불구하고, 반대표는 예상보다 훨씬 많이 쏟아졌다.

◇ 40% 육박 청년실업…기회 박탈당한 젊은이들의 분노

2014년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하더라도 70%를 넘나드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개헌안이 좌절된 것은 젊은층의 반대가 특히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일 지면에서 “이탈리아는 포퓰리즘에 쓰러지는 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며 “이는 부분적으로 젊은 유권자의 환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청년층이 국민투표 부결을 이끈 것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세계화에 소외된 노년층의 주도로 이뤄져 브렉시트에 반발한 젊은층과 세대 갈등을 빚은 것과는 대조적이라 눈길을 끈다.

이탈리아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평균 경제 성장률이 4%를 웃도는 상황에서 작년에 0.8% 성장해 수 년에 걸친 역성장에 겨우 마침표를 찍었다. 실업률은 11%대 중반을 넘나들고, 청년실업률의 경우 40%에 육박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의 평균 실업률이 10%를 밑돌고, 청년실업률은 18.4%에 불과한 것에 견주면 10명 중 4명은 일자리가 없는 이탈리아 젊은 세대의 팍팍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EU 통계기구인 ISTAT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이탈리아 15∼29세 젊은이들 가운데 취업을 하거나 교육(직업 교육 포함)도 받지 않는 이른바 ‘니트족’(NEET·Neither in Employment nor in Education or Training)의 비율은 2008년 19.3%에서 작년 25.7%로 치솟아 유럽 최고를 기록했다. 한창 미래를 꿈꿀 나이의 젊은이 4명 중 1명이 사실상 미래를 포기하고 백수로 지낸다는 의미다.

설령 일자리를 구했다고 하더라도 일자리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진다. 이탈리아 연구기관 Censis는 이탈리아 밀레니얼 세대(1980년 초반 이후 출생한 세대)의 평균 소득이 전국 평균보다 15.1% 낮다고 밝혔다.

또, 패션·명품 산업 정도를 제외하고는 제조업과 첨단 산업이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성장이 정체된 탓에 현재 1인당 실질 국민소득이 1997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오늘날 젊은 세대의 임금은 25년 전 젊은 세대의 임금보다 26.5%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Censis는 덧붙였다.

당장 일자리가 없어 부모집에 얹혀살거나, 직업이 있더라도 안정성이 떨어져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나 결혼, 출산 등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이탈리아 청년들은 “이탈리아의 미래와 우리의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져달라”고 호소한 렌치 총리의 말에 냉소했다. 작년 기준으로 18∼34세의 이탈리아 청년 세대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67.3%가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런 비율은 유럽 평균보다 약 20%포인트나 높은 것이다.

이탈리아 젊은 세대는 2년 9개월 전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로 취임한 렌치 총리의 개혁 정책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그의 재임 기간 청년실업률이 체감할 만큼 개선되지 않고, 경제 성장도 지지부진하자 렌치 정부의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는 오성운동 등 야당의 주장에 급격히 기운 것으로 풀이된다.

렌치 총리는 지난 9월에 올린 트위터에서 자신이 취임한 지 30개월 만에 실업률은 13.1%에서 11.4%로, 청년실업률은 43.6%에서 39.2%로 하락했고, 이 기간 GDP 성장률은 -1.9%에서 1%로 개선됐다고 자화자찬했으나 이 정도의 지표 개선은 사람들이 실제 경기가 좋아졌다고 느끼기엔 역부족이었다.

좌파와 우파로 구분된 기존 정치에 반기를 들고 2009년 창당된 포퓰리즘 성향의 제1야당 오성운동은 이번 국민투표에서 렌치 정부의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며 국민투표 부결 운동의 선봉에 섰다.

베페 그릴로 오성운동 대표는 투표 운동 기간에 “2조 유로(약 2천250조원)의 천문학적인 빚을 지고 있는 이 나라는 완전히 망가졌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존 시스템을 버리고 교육부터 의료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이 직접 맡아 운영하는 시민 혁명이 필요하다”는 말로 기득권 심판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젊은 세대는 이에 환호했다.

◇ ‘밀물’ 난민…올해 유입 난민 사상 최대

청년층이 경제적 원인으로 렌치 총리에게 등을 돌렸다면 밀물처럼 유입되는 이민자와 난민들의 존재는 보수적인 장년층과 노년층이 지지를 철회하는 요인이 됐다.

EU와 터키의 난민 송환 협정으로 그리스로 향하는 뱃길이 뜸해짐에 따라 올 들어 이탈리아는 아프리카 난민의 최대 관문이 된 형편이다. 올해 현재까지 유입된 난민 수는 17만1천명으로 종전 최고 기록인 2014년의 17만명을 이미 넘어섰다.

로마의 한 식당 매니저로 일하는 50대 여성 마리아는 “렌치를 지지했으나 난민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걸 보고 실망했다”며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인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3일자 신문에서 “렌치 정부는 상원 축소 등으로 매년 5억 유로를 절감할 수 있다고 선전하면서도 매년 25억 유로를 이탈리아에 들어오는 난민들에게 쓰고 있다”는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 정당 북부리그 활동가의 말을 전했다.

이 활동가의 말처럼 이탈리아 일부 도시는 이탈리아 정부의 난민 균등 분산책에 따라 자신의 지역으로 할당된 난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을 입구를 봉쇄하고, 일부 학부모는 난민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다른 화장실을 쓸 것을 요구하는 등 밀려드는 난민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며 난민 혐오감이 사회 문제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반 난민·반 EU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극우정당 북부리그는 약 13%의 지지율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지지율 12%)를 제치고 우파 정당 중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 “상원 축소하면 민주주의 후퇴” 논리도 일부 영향

이탈리아 야당들이 렌치 심판론과 함께 국민투표 반대 명분으로 내세운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도 유권자들에게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상원의 권한이 축소되더라도 이탈리아는 영국이나 독일식 양원제를 갖게 되는 셈이라 이번 개헌안이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이라는 흑역사를 지니고 있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상원의 권한 축소는 제2의 무솔리니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했다.

상하원에 고르게 권력을 분배한 현행 시스템은 1921년부터 1943년까지 이탈리아의 수상으로 있었던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처럼 독재자가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만들어졌다.

동성결합법을 서유럽에서 가장 늦게 채택한 것에서 엿보이듯 서구 다른 나라보다 훨씬 보수적인 이탈리아인들이 과거 로마 공화정 시대 원로원에 뿌리를 둔 2천 년 역사의 상원을 거의 폐지 수준으로 축소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일부 존재했던 것도 국민투표 부결에 힘이 실리는 한 요인이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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