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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이라 욕해도 좋다! 관객은 어느새 열광한다

B급이라 욕해도 좋다! 관객은 어느새 열광한다

입력 2010-08-09 00:00
업데이트 2010-08-09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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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코믹 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

2006년작 국산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을 기억하는지. ‘19금(禁)’ 성인용답게 적나라한 욕설과 잔인한 폭력 같은 B급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짐작하듯, 두 주인공 아치와 씨팍이란 이름 자체가 ‘양아치’와 욕에 자주 등장하는 ‘18’의 변형이다. 모든 에너지 자원이 고갈된 뒤 똥이 유일한 에너지원으로 남은 미래세계를 풍자적인 필치로 그려내 주목받았던 작품이다. 영화 ‘전함 포테킨’의 오데사 계단 장면을 패러디한 사이보그 경찰 ‘개코’의 화려한 액션신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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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와 씨팍’은 질문도 남긴다. 미래세계의 디스토피아적 음울함을 그려내는 애니는 미야자키 하야오 풍의 동화여야만 하는가. 뮤지컬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져 보자.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남는 것은 그냥 폼나는 남녀배우의 애정행각일 뿐인 게 뮤지컬인가. 이 질문에 공감했다면 당신은 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의 딕펑스호에 승선할 자격은 갖춘 셈이다.

● 순결한 처녀 찾아 원더랜드로 황당함 뒤에 웃음

‘치어걸’도 B급 코드인 ‘황당함’ 위에 서 있다. 신종 돼지플루 때문에 여자란 여자들은 다 죽어버렸다. 전설의 섬 ‘원더랜드’ 어딘가에 순결하고 아름다운 처녀 ‘치어걸’이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송용진 선장의 해적 일당은 딕펑스호를 타고 원더랜드를 찾아나선다.

내용도 거침없다. 항해를 방해하는 포세이돈을 물리치기 위해 관객들과 함께 욕 주문-물론,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을 외치기도 하고, 에로틱한 해피 오르가슴 댄스를 추기도 한다.

아예 단체로 한 놈만 패는 시간도 있다. 뮤지컬 공식클럽(club.cyworld.com/showfac) 게시판에 욕할 대상과 사연을 적어 신청하면 배우와 관객 모두 다같이 욕을 퍼부어주는 것. 지금까지 도마에 오른 사람들은 논문 통과 안 시켜 준 교수님, 감히 손님을 타박한 옷가게 주인, 간호사라고 무시한 큰 병원 의사님, 부하 직원 못살게 굴었던 모 회사 부장님 등이다. 오후 10시 즈음 갑자기 귀가 간지러우면 잘 생각해 보라. 이러다보니 벌써 마니아들도 생겼다. 노래가사와 춤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물론, 욕설과 가운데 손가락질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관객들이 보인다.

● 홍대서 마니아층 형성… 대학로 입성

작품 탄생도 B급답다. ‘치어걸’은 인디밴드 기획사 ‘해적’ 대표인 송용진이 소속 뮤지션인 인디밴드 딕펑스와 김정우(기타)를 끌어들여 만들었다. 음악도 원래 부르던 곡들을 뮤지컬에 맞게 편곡하거나 개사했다. 관객을 상대로 노략질할 때 부르는 곡 ‘다 내놔’ 정도가 공연 때문에 새로 만들어진 곡이다. 무대 위 연기도 평소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며 장난치던 모습 그대로다. 이런 작품이 대학로 입성에 성공한 것은 지난해 말 홍대 앞 공연을 송한샘 쇼팩(공연기획사) 대표가 봤기 때문. 홍대 공연을 진행하면서 대학로에 숱한 러브콜을 보냈으나 송 대표만이 유일하게 이 공연을 챙겨봤단다.

송 대표는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에서는 연출자에 의한 소규모 제작 공연이 먼저 오르고, 프로듀서들이 그 가운데 가능성 있는 작품을 뽑아 본격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이 일상적”이라면서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시스템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면 배우 오디션 등 업그레이드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쇼팩의 투자 덕에 지금의 거창한 무대가 마련됐지만, 딕펑스호 선원들은 홍대 공연의 초심을 지키자고 다짐하고 있다. “제가 무대에서 들고 있는 조타핸들 보이시죠. 홍대에서 처음 공연할 때 제작비가 고작 50만원이었습니다. 지금은 억대지만요. 돈이 없어서 주변에 굴러다니던 옷걸이 같은 걸로 만들었어요. 그 50만원짜리 무대, 그 인디 정신을 상징하는 게 이 조타핸들입니다. 그래서 조타핸들만큼은 끝까지 우리 무대와 함께할 겁니다.” 선장 송용진의 말이다. 9월18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티스탄홀. 3만~4만원. (02)548-114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0-08-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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