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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쓴다”

“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쓴다”

입력 2010-08-17 00:00
업데이트 2010-08-1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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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노벨문학상 수상 헤르타 뮐러 방한

“도시의 왕이 비틀거리면 사람들은 그가 허리를 숙였다고 말하지만, 그는 허리를 숙이고 죽입니다.”

16일 중앙대 아트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14회 국제비교문학대회에 참가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57)는 덤덤한 말투로 기조강연을 이어갔다. 강연 제목은 ‘이발사, 머리카락 그리고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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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14회 국제비교문학대회에서 루마니아 출신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뮐러는 “독일로 망명한 뒤 허파가 생겼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연합뉴스
16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14회 국제비교문학대회에서 루마니아 출신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뮐러는 “독일로 망명한 뒤 허파가 생겼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노벨상 수상 연설 때 할머니가 건네던 ‘손수건’을 화두로 삼았듯, 어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 작은 키워드로 자신의 체험과 작품 세계를 설명해 나갔다. 할아버지 때의 1차 세계대전과 민족주의 광풍, 부모와 자신 세대에 있었던 2차 세계대전과 나치즘, 그리고 조국 루마니아에 드리운 독재의 풍경 등에 대한 세세한 증언이 이어졌다.

반항하면 겉으로는 사과하고 미안한 척 고개를 숙일지라도, 속으로는 좀 더 악랄하게 괴롭힐 거리를 뒤지는 것은 모든 독재자들의 공통점일 듯. 뮐러의 장점은 이를 한폭의 풍경화를 그려내듯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서 멈춘다는 것이다. 목청 키워 주장하거나 억울했노라 울부짖지 않는다. 그저 그때 그랬노라고만 말을 끊는다.

노벨상 수상에는 그런 문학성도 영향을 끼쳤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마음짐승’ 등 뮐러의 대표작도 그의 방한에 맞춰 잇따라 국내에 번역 출간되고 있다. 다음은 기조강연 뒤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

방한 소감은.

-(한국 방문은) 처음인데 어제(15일) 와서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광복절 행사를 호텔에서 (TV로) 지켜봤는데 묘했다. 남한에는 이런 민주주의가 있는데 북한은 아직도 뒤떨어진 독재를 하고 있다. (가까이 붙어 있는) 남북한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과 루마니아는 절친했던 관계다.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있나.

-(루마니아 독재자인) 차우셰스쿠와 김일성의 관계는 유명하지 않았나. 유감스럽게도 차우셰스쿠는 북한을 모델로 삼았다. 문화혁명이라는 것도 그대로 가져왔고, 인물 숭배나 부자 세습도 그대로 가져오려 했다.

그런 느낌이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

-난 루마니아인이다. 한국작가들이 이미 그런 주제를 많이 다뤘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런 작품을 하나쯤 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로선 아니다.

작품을 보면, 몹시 어두운 유년기가 연상된다.

-맞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랐고 독재자의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은 언제나 순간적인 것이다.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행복해도 끝까지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불우함이 끝까지 영향을 주진 않는다.

당신의 작품은 고발인가, 기록인가.

-1980년대 말 독일로 망명한 뒤에도 루마니아에는 독재가 계속됐고, 독재정권이 망가지는 것까지 지켜봤다. 고발인가 기록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치 않다. 문학은 변혁을 이뤄내는 것 같은 그런 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아주 작은 사물과 개인에 대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텍스트에 고발 자체가 있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정치적 팸플릿이라 생각한다. 난 담담히 기록해둔 것이고, 독자가 읽다가 분노를 느낀다면 그것은 고발이 된다. 내 작품은 나 스스로 분명히 하기 위해, 또한 살기 위해, 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쓴 것이다.

국내 소개되는 책들이 주로 초기 10년작들인데 후기작들은 어떤가.

-초기 10년작은 주로 루마니아(시절) 때 쓴 것이어서 마음이 항상 불안했다. 빨리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주로 단편이었다. 독일로 건너가서는, 이를테면 ‘허파’가 생겨났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길게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까 말했듯, 문학은 사소한 것들을 다루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작품세계에 그리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노벨상 수상 뒤 변화는.

-없다. 난 똑같은 사람이다. 공적인 자리가 많아져서 좋은 면도 있는데,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대면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다만 내 작품 때문에 사람들이 독재를 잊지 않고 독재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해서 좋은 점은 있다.

끝으로 작가 지망생들에게 해주고픈 말은.

-없다.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0-08-1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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