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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너, 정체가 뭐냐?

色…너, 정체가 뭐냐?

입력 2012-01-28 00:00
업데이트 2012-01-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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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경계 허문 문지하 ‘스프링필드’展

“전혀 안 그렇게 보일 줄 알았어요.” 시침 뚝이다. 척 봐도 한국적인, 민화적인 요소들이 잔뜩 모여 있는데 작가는 아니라고 한다. “아마 한국 사람에게 익숙해 보인다면 그건 아이콘 때문이 아니라 색감 때문일 거라고 봐요.” 작품에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니 복잡해진다. “저게 한국에서 따온 거 같죠? ‘펜실베이니아 더치’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거예요. 그 사람들이 쓰는 민속적 도안에서 따온 거죠.” 독일계 이민자들이 미국에 모여 사는, 아직도 마차를 타고 맨발로 걸어다니면서 기계문명을 배척하고 농업에 파묻혀 사는 그곳이다. 부채모양을 가리키자 “미국에서도 장례식에 저런 모양의 부채를 쓴다.”고 답한다. 전통방식으로 물들인 나염방식의 천을 집어들자 “그건 타이다이라고, 미국에서 반전운동의 상징물과도 같은 천”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온전히 한국적이고, 온전히 미국적인 게 대체 뭐냐는 얘기다.
‘미스터리 묘’(Mystery Myo). 고양이 같은데 실은 개다. 묘한 정체성이다.
‘미스터리 묘’(Mystery Myo). 고양이 같은데 실은 개다. 묘한 정체성이다.


오는 3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 ‘스프링필드’(Springfield)를 여는 문지하(39) 작가다. 문 작가는 대학, 대학원 졸업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 정체성 문제 때문이다. 13년간 미국에 살다 보니 한국어 발음도 슬쩍 굴러가려고 한다. 허나 그곳 사람들은 작가를 아시아계로 규정한다. 무얼 해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여전하다. “너는 어디서 왔니(Where are you from?).” 작가의 작품은 이에 대한 응답이다. 그런데 약간 삐딱하다. 작가의 대답은 질문과 동일한 “Where are you from?”이다. 나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너의 정체성은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는 반문이다. 정체성에 대한 강한 부정, 그리고 혼종성에 대한 강한 기대가 담겨 있다.

모든 선택은 이에 따른다. 매체는 종이다. 번지고 스며들고 섞이는 매체다. 아예 천이나 다른 소재들을 찢어다 붙이기도 한다. 다만 연결부분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무척 신경 쓴다. 섞되 섞인 것 같지 않게, 자연스럽게다. 작품에는 수많은 다양한 아이콘들이 등장한다. 한국 것 같기도 하면서 중국이나 일본풍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서양적이기도 하다. 기법도 마찬가지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처럼 흥겹게 작업한다.”는 작가의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팝아트로 유명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처럼 작업한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 구도는 동양 산수화다. 그런데 색은 거침없다. 작가는 “아마 저처럼 무식하고 용감하게 다양한 색을 다 쓰는 작가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색깔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도 한번 뒤섞어버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검은색은 절대 안 쓴단다. “동양인이라 수묵을 썼다.”란 기계적 도식을 던져버리고 싶어서다.

이렇게 한데 뒤죽박죽 다 섞어둔 세상에다 작가는 스프링필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프링필드는 미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동네 이름. 봄날의 정원처럼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의미다. 차이와 분별의 경계를 지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든 그곳이 도화세계이자 유토피아가 아닐까. 출신을 질문받은 작가가 출신을 되묻는 이유다. (02)723-619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2-01-2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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